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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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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안식일. 오늘 두 주만에 안식일 예배를 드리러 간다.조금 후 동료와 교대를 하면 상도동 숙소에 들러 일용품을 내려놓고 마포안식일교회로 갈 것이다. 우리 직업이 24시간 맞교대이기 때문에 매주 참석을 못하고 2주에 한번 참석을 하는데 그도 늘 얘기하지만 9년을 교회에 다녀도 무늬만이고 더군다나 내가 교회에 다니게 된 동기제공자인 독실한 교인인 아내가 교회예배참석을 안 하는지 꽤 오래되어 나도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인데 우리 아내 말씀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만두더라도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마포교회를 지키시는 오래된 老교인 분들과 집사님들 아니면 그나마 교회성전을 지킬 수 있을까 싶지만 그분들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 푸닥거리.
&.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던 즈음. 1954. 음 5.15일생인 나는 세 누이 아래 장남으로 태어났다. 띠동갑 1942 생 맏누이 아래 남동생을 보고 둘이 같이 홍역을 하다 딸은 살고 아들은 그 어린 나이에 먼저 가서 호적에도 올라 보지 못했고 그 뒤로 딸을 둘 더 낳고 내가 태어나 장남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아마도 우리 형처럼 그렇게 죽은 아이들도 많아 호적에 올리는 출생신고를 미루거나 먹고사는 일에 바빠 제 날자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물론 내가 다 자라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호적에는 1955. 5. 14일로 등재가 되어 있고 실제 국민학교 입학은 1960년도에 해서 1966년에 국교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했고 역시 1969년에 중학교졸업 그해 고교입학 그리고 1972년도에 나의 학교생활이 끝이 나게 된다.동창생들은 보통의 경..
&. 철없는 늘근 꼰대. 우리 나이( 이제 의미도 사용도 안한다지) 일흔하나를 먹었어도 한군데 일자리 정착을 못하고 수도 없이 순례를 하고 있다. 친구나 친지나 형제도 좋은 말로는 대단하다거나 재주좋다고 하지만 나처럼 곧이 곧대로 말하는 이들은 그만 움직여라 직장이 다그러니 하고 작년 12월에 오년여 앓다 간 서로 제일 자주 봤던 친구는 니승질 고치지 않으면 어디가도 마찬가지다 했었다. 어찌 되었든 같은 조건에서 다는 아니지만 참고들 일하는데 나는 참다가 병생길테니 일자리 순례도 근속만큼 힘들지만 바꾸는 길을 택한다고 말한다. 내가 승질이 못되어서 보다는 머리 돌아 가는게 맹해서가 맞는 말일거다. 상대에 따라 대응을 잘하면 되는데 그냥 매사를 곧이 곧대로 하기 때문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그렇다. 문제는 이런걸 알고 있지만 이성보..
&. 응답하라 1987. 7. 3 '규수당예식장' - 행복했나요? -
&. 그래, 사는게 힘드는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지금 일에 종사한 지 14년이 지나 15년째고 그전 같은 분야의 다른 일을 시작한 것까지는 22년이 지나 23년째가 된다.1987.7.3 서른넷에 장가를 가서 아는 사람 없는데서 아무 일이라도 해서 살겠다고 태어나서 살던 서울을 떠나 부천에 방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대기업 무역부 사원으로 근무를 하다 나이가 들어 사직을 하고 노처녀가 된 아내를 만나 직장 생활할 때 보았던 좋은 대학 나온 남자사원들의 쪼잔함을 보고 직장인이 별로라고 그 좋은 자리 마다하고 칠 남매 장남에 직업도 학력도 벌어놓은 것도 없던 내게 눈이 멀어 시집을 온 아내가 아니었으면 아마 혼자 지냈을 내가 장가를 갔다. 다행히 장남이라도 그 당시 엄마는 경제력이 있으셨고 형제들 누구도 나를 도우면 도왔지 기댈 사람도 없어 우리만 잘 살..
&. 반응이 그래. 블로그, 지금의 티스토리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다음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때가 2012.12월이었으니 12년이 되어 가는데 티스토리로 바뀌기 전에는 일상을 올리는 "늘근소년의 일기" 하루 방문객이 평균 100명 이상이었다. 그러다 티스토리로 강제로 바꾸고는 50여 명의 친구도 다 끊어지고 방문객도 절반이하로 줄고는 댓글도 아예 없어지더니 요즘은 그나마 방문객도 들쭉날쭉 어제에 이어 오늘은 아예 17:44 현재 2명뿐이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나의 의도는 공개되는 일기를 통해서 나의 글솜씨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댓글이나 방문객의 숫자가 궁금해 거의 매일 확인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블로그를 시작할 때는 SNS라고..
안식일에 내리는 비. 아침 퇴근을 하고 바로 옥탑으로 가서 겉옷도 챙기고 어제 출근하면서 남긴 냄비와 그릇 하나 설거지도 하고 세탁한 빨래 몇 가지 내려놓고 보일러에 전기를 연결 방안 온도를 체크, 32˚인걸 확인하고 우산을 챙겨 나와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고(7, 신림, 9, 5) 애오개역에 내렸다. 보통의 교인들은 안식일 아침 일찍 교회에 도착 성경공부와 교회청소 교인들과의 소통 등등을 하고 열한 시부터 정오까지 본예배 드리고 열두 시경 여성집사님들이 정성으로 준비하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성경공부 그리고 대민봉사활동 등등을 하며 토요일 안식일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2015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무늬만 교인인 나는 이주에 한번 참석하는 안식일 예배도 본예배 시간에나 겨우 참석을 하고 점심만 얻어먹고 간혹 설거지나 할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