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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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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을 해볼까 작정을 하다.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내가 지어 낸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처음 시작은, 고교 졸업 후 늦은 결혼을 할 때까지의 황금기를 버리고 다잊고 살다 2012년 아들이 나이가 늦게 입대를 하고 인터넷편지를 쓰면서 시작된 컴퓨터와의 만남이 그해 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고교를 다니던 때의 문예반 감성으로 부터 무려 40년이 지난 후 였다. 거의 잃었던 문장력이 그 후 일기를 계속 쓰게 되면서 조금씩 살아 났다. 그러나 그도 불과 6개월 정도 지나 옮긴 직장의 여건이 열악해 우울증이 온 후 블로그 문도 닫지 않고 開門상태로 이년여가 지나 가게 되었다. 그뒤로 그래도그 직장에서 이년을 버티었는데 2015년 1월1일 부터 담뱃값이 이천오백원에서 사천오백원으로 올라 과감하게 44년동안 피우던 담배..
&. 일상이 苦行이 되다. 기온이 내려가 겨울이 되었어야 할 시기에 따뜻한 날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30일 무렵부터 기온이 내려 간다는 예보다. 그렇다 세상사가 늘 가던대로 가야 평온이 유지가 되지. 날씨나 사회나 政治나 돌발상황이 생기면 그만큼 일상이 무너지고 헤어 나기가 힘이 든다. 지난달 말의 이태원에서 있었던 사고도 예측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다만 미리 대비를 못한 서울시나 경찰등에 책임은 있으나 그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문제는 아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의 동반책임이라는 얘기다. 기다렸다는 듯이 책임자 처벌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무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그렇게 떳떳한가를. 이번 일이 그렇게 한쪽에게만 떠넘기듯 책임과 처벌을 요구 할 일인가 말이다. 세월호 침몰도 그렇고 평소에는 자기 정치생명에만 관심을 두는 정..
&. 보기만 해도 좋은 날. 지금 일기를 올리는 여기 마포평생학습관 바로 옆에 있는 서교초등학교에서 가을 운동회가 열려 단상에서 학생들을 통솔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리고 있다. 다 늙은 내가 초등학교 운동회가 좋은 것은 아마도 아이들을 좋아 하는 것도 있지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1960~1966 에는 서울에 국민학생이 최고로 많아 6년 동안 운동회를 한번 못해 보고 졸업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교들어 가기 전 누이들 따라가 운동회 구경은 했지만 막상 나는 국교다니는 동안 한번도 못해 보고 졸업을 했는데 그 뒤 누가 생각을 했는지 삼개학년씩 둘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운동회를 하기 시작을 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지. 내가 국교를 다닐 때에는 졸업할 때까지 한반 학생수가 80명을 넘었었다. 오전 오후반이 있었는데 그..
#. 모두 다 늙어 간다. 오늘 오후에 만나기로 한 둘째 처남도 어제 무슨 생각인가 하다보니 올해가 환갑인 나이라 마눌에게 톡으로 만나기로 했 다는 얘기와 올해가 환갑이네, 맞다고 해 생일이 언제지 물으니 지났어 초파일. 그제서야 생각이 나기는 났는데 내 코가 석자라 기억을 못하고 지나 갔다. 다행히 마눌이 아는 시늉이라도 했다길래 잘했어 하고 내 환갑때를 생각했다. 요즘 환 갑은 돌잔치 정도로 가볍게 지나고 그동안 살아온 이력이 자축을 할만한 경우도 아니고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아 생각도 없이 지나 가기로 마음을 정했고 당시에 또 우울증도 심해서 그거 벗어 나기도 힘이 들었다. 그리고 동갑내기 처남이 같 이 환갑을 지내자고 하던 중 지병으로 이월에 먼저 가는 바람에 그도 눈에 밟혔는데 처남과 처제가 식사라도 하자는 연 락을 했다..
&. 과거 일기.
#. 건강이 답이다. 엊그제 포천 이동 백운동에 다녀 오고 어제 출근해 하루 종일을 피곤에 지쳐 지내고 오늘 아침 퇴근을 했다. 2015년 1월 2일에 수십년 동안 피운 담배를 끊고 지금까지 내 인생의 변화가 여러 가지 왔는데 그 첫째는 평소 증세가 심하던 躁鬱症이 없어졌고 그걸로 인해 건강한 心身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 갑짜기 躁症이 왔을 때는 목동의 고층오피 텔에서 기사 둘과 기전주임을 맡아 근무를 할 때라 저녁에는 한명은 관리사무소옆 방재실에서 근무하며 잠을 자고 나하 고 기사 한명은 지하 5층 기계실에서 잠을 잤는데 담배를 끊고 얼마후 부터 조증이 와서 새벽 한시나 두시 쯤 잠이 깨는 데 일어나 컴이나 TV도 켤 수가 없고 불을 킬 수도 없어 그 추운 겨울에 밖으로 나가 파리공원 일대를 걸어 다녔다. 그렇 게 시작된 ..
#. 나의 5.17 1979.7월 제대를 하고 바로 취직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1980년 봄에 고교 같은과 동창의 소개로 당시 신설동에 있던 동대문구청 앞의 설계사무소(일명 허가방)에 신입으로 들어가 도면그리는 방법부터 새로 배우기 시작을 했다. 그 봄이 우 리나라 정치판에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앞이 안보이는 캄캄한 시기였다. 이른바 3김이 자신이 정권을 잡겠다고 각자 행 동을 하고 최 규하 대통령은 말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고 10.26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얼굴을 알린(지금은 사망한) 소위 보안사령관의 움직임이 시작될 때였다.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원하는 국민이나 정치권의 3김을 비롯한 민 주화 열망을 가진 국민들의 바람은 멀어지고 매일 데모로 날을 지새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5.17일 갑짜기 전국에 비상..
#. 말로 주는 상처. 함께 늙어 가는 내 아내가 내게 하는 말, 당신은 친구나 동료나 남들에게 평소에 하는 말중에 상대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말이 있으니 잘 생각하고 얘기를 해라 한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나도 생각을 해보는데 상처를 주기 위해서는 아니고 매사를 솔직히 얘기하다 보니 그 것 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모양이다. 문제는 나처럼 호불호나 느낌을 얘기하는 사람보다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아무 얘기 도 안하거니와 심한 경우는 아예 연락을 안한다는 거다. 그런 경우 또 뭔가 실수를 했구나 하고 풀기 위한 시도를 한다. 그래도 풀지 않을 때는 할 수 없이 멀어 지고 만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도 내가 했던 말이 상처를 주 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말투가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원래 단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