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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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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날에. 아직 손주를 보진 못했지만 이 세상 모든 어린 손주들 축하합니다.건강하게 잘들 자라서 부모님과 조분님, 그리고 선생님들께 이쁨받는 어린이들이 되기를 아직 손주를 못본 나이 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소망합니다.우리도 내년에는 서른아홉이 되는 아들이 손주를 보게 해주기를 기도 드리구요.어린이 여러분 오늘 어린이 날,축하 축하 합니다.건강하게 자라 우리나라의 소중한 국민으로 자라 주세요.축하합니다.여러분!-2025.5.5 롯데 은평 교보문고에서. "연희 할배"가.-D + 4,547
입에 담기도. 내가 20대이던 1970년대에는 당시 우리들이 흉을 보던 삼김이 우리나라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박통에게 당당하게 대들었어도 識者인척 하던이들이나 젊은 우리들이 그들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들을 했었나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지내다 70년대 말에 아무도 예견못한 10.26사건으로 18년 동안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고 셋이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다시 군인들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고 7년과 5년, 합 12년을 넘겨 주고서야 소위 文民시절을 맞았었다. 그들이 소위 40대 기수론을 앞세우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기는 했어도 나름의 통치력이 있어 그 후 우리정치가 발전을 했지만 작금의 여 야 대표나 대통령, 그 부인을 보면 내가 우리국민인게 민망하고 창피하다. 장기복무 군인들이 정권을 잡고..
세상이 어수선 내도 어수선. 언제 부턴가 탄핵이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되고 한번 맛을 들인 가짜 진보들은 그 조심해야 할 말을 눈뜨고 부터 입에 달고 산다.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을 그들 편이었던 노통에게 밀어 붙여 본 뒤로는 상대편에게 성공한 뒤로 재미가 붙은 모양. 서울대학생회장을 했다는 노통 배신자를 상임위원장에 앉히고 마포를 대를 이어 쑥밭만드는 가짜 청정제를 역시 법대에 앉힌, 공돌이 팔아 재주로 먹고 산 가족팔이. 사람에 복종안한다던 덩치는 치마폭에서 벗어 나기는 커녕 나라를 들이미니 서민이 일으킨 나라 꼴이 민망하다. 내는 어떤가, 어제 자정에 뜬금없이 받은 '18넘아 나이먹고 근무똑바로 해라' 라는 문자에 잠이 달아나 '개인줄 알았지만 역시 개자식' 이구나 하고 차단을 했다. 1960이 1954에게 나이 탓한다. 그러고..
바람이 분다. 오늘, 점심을 먹는데 걸려온 전화. 내게는 이틀에 하루 근무날 업무전화 이외에는걸려 오는 전화도 없는데 교회누님뻘 집사님 전화가 와서 한참을 교회얘기 서로 가정얘기 등등을 나누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가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와 다시 걸겠다고 하고 끊고 얼른 남은밥을 먹고 치웠다. 빈말이라도 천천히 먹으라는 얘기가 없어 더 민망했으나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오늘은 쌀쌀한 날씨라 출근할 때도 어제 꺼내 입었던 추동졈퍼를 입고 출근을 했다. 지금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 더 겨울느낌이 다가 온다. 지난 여름이 너무 덥고 길어 혼들이 났지만 그래도 우리 庶民들은 겨울보다는 여름나는게 수월하다. 연료비에 의류비 등등 돈들일이 많아지는 까닭이다. 작년 겨울을 옥탑방에서 나는 동안 춥기도 했지만..
내가 살아가는 힘. 내 직업은 누차 얘기한대로 공동주택 관리사무소 기전담당 직원이다. 그래 연중무휴(단 한번 여름휴가 4~5일, 아침 퇴근해서 부터 닷새 후 아침 퇴근할 때까지)교대근무를 하는. 주5일 근무도 있다. 세대가 많아 격일근무자 외에 주간근무자가 있는 근무지에는 내가 지원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격일제는 하루근무하고 하루를 온통 내 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 그 하루를 가까운 근교로 트레킹을 하거나 교육청 도서관에서 무료 컴사용이나 신문도 보고 가끔은 가벼운 책도 보고 또 취업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의 면학열기도 느끼고. 방금 1997~2004 살았던 이문동 외대암역을 지났다. 그리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이나 경치, 사물등등을 폰으로 찍어 바로바로 SNS에 올리거나 2012부터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
오늘 76주년 국군의 날. 내가 군대생활을 마치고 제대한 지 올해 7.24일 45년이 지났으니 어느새 꼰대가 되었구나.그리고 바로 어제 오후 늦은 시간에 연희동 우리 집 앞에서 만난 아내와 역시 우리 생활권인 양화대교 선유도공원에서 산책 중 만난 한쌍의 젊은이가 강물을 향해 놓인 그네형 나무벤치에서 일어나 돌아 서는데 군인의 어깨에 붙은 부대마크를 보는 순간 자동으로 나의 환호가 터졌다. 열쇠마크, 바로 내가 복무했던 보병제 5사단 열쇠부대 군인이었다. 내가 그 부대에서 제대를 했다고 얘기하고 나는 33개월을 복무했고 제대한 지 40여 년이 지났고 사단이동도 했다고 들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들었다고 했다. 양평에서 17개월 연천 전곡에서 17개월을 했다고. 보병 27 연대 소속이라고 해서 나는 공병대대 출신인데 제대 바로 전에 ..
인간관계의 어려움. 칠십이 넘은 내게 가장 어려운게 무어냐 하면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말이 없어도 말이 많아도 문제가 되고 가장 좋은 처신은 말은 적게 표정은 웃음으로 인데 그거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거다. 내 경우 말은 많은 편에 성격도 급해 남들과 의견차이가 생기면 목소리부터 커져 내가 잘한 일도 내가 나쁜사람이 되고 흥분을 해서 서로 욕설까지 주고 받으면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도 나를 나쁘게 보게 되어 결국 내가 손해를 본 경우가 태반이다. 남들 보기에 안좋으면 나는 모르겠는가, 나도 나를 잘 알지만 타고 나는 것은 고치려 해도 어느 정도이지 다 고치지는 못한다. 나뿐아니고 사람들 모두 그럴 것이고 고치는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일반인은 어려운 부단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나도 사람들과 소통을 할 ..
&. 과거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