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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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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값이 기가막혀. 오늘 우리 제 칠 일 안식일교회의 예배를 드리는 안식일이다.모든 교인들이 아홉시 전에 교회에 모여 교과공부를 하고 일주일간의 소식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내가 아내를 따라 처음 교회에 나왔던 2015 시월부터 아내도 열한 시 본예배에도 겨우 참석을 한 날이 많았고 나는 일찍 나와도 교과공부와 교인들끼리의 소통시간이 너무 지루해 이렇게 오늘처럼 교회 앞에 있는 도서관으로 와서 공짜컴을 잠깐 사용해 일기를 올리고 예배를 보러 간다. 평소에는 홍대 부근 마포학습관 본관을 주로 이용하고 안식일에 이주에 한번 예배참석을 하는 날에는 아현분관을 이용한다. 서울시교육청소관 마포도서관이 처음 생기기는 지금 아현분관이 먼저였고 서교동이 늦게 생겼는데 장소도 건물도 넓고 커서 반대로 본관 분관이 바뀌었다고 한다. 여기 아현..
추석 연휴가 시작. 주5일 근무자들은 아마도 슬슬 업무마감을 하고 귀향 준비를 하거나 귀가를 하고 솔로들은 여행을 가는 기분에 들뜨는 시간이다. 우리 24시간 격일 근무를 하는 시설관리자들이나 경비근무자들이 년중 제일 힘들 때가 시작된다. 양 명절과 신년 연휴기간중, 그나마 신년은 이제 주중에는 공식으로는 하루만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어 직장인들이나 공동주택 주민들이 걱정없이 명절을 보낼 수 있으니 나라를 지키는 국군장병과 함께(ㅎㅎㅎ) 보람을 가지고 임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장남인 나는 차례를 지낼 때 명절당일 근무차례가 되면 곤란했었지만 이제 제사도 廢해 지내지 않는지 오래고 지금은 엄마께서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형제들이 모여 이번에도 내가 근무날이라 열나흩날 모이기로 했다. 몇 해 계속  명절당일 근무가 이어..
체력의 한계가 오나보다. 어제 사무실에 올라가 보자기로 묶은 샤인머스켓 한판을 얻어 오늘 아침 가지고 나왔는데 출근시간이라 지하철에 사람은 많고 옆으로 들 수도 없어 간신히 당산행 급행을 타고 겨우 구석에 서서 승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당산에 도착, 2호선으로 환승 신촌역에서 하차, 마을버스를 타고 연희동 사러가 쇼핑을 지나 올라가 평화교회에서 내려 잠깐을 또 걷고 우리집 현관문에 내려 놓고 돌아 내려와 다시 신촌역으로 왔다. 지금 일을 하면서 10여년 전 동대문 굿모닝시티에서 승강기회사에서 선물한 배 한박스를 받아 보고 처음이다. 기껏해야 식용유나 치약세트, 아니면 캔들은 세트나 받아 보는게 전부였다. 이번 포도도 코엑스앞 대로를 지하로 보내고 지상공원을 만드는 공사업체에서 밤낮 시끄러운 소음 무마용이다. 여튼 식구들 잘먹으..
하루를 못보내다. 懺禪수양이라도 하겠다고 해놓고는 하루를 못 넘기고 禍를 참지 못하니 구제불능이지. 오늘 아침 출근길 고속터미널역에서 환승을 하려고 수많은 사람이 전동차에서 내리는데 뒷사람이 배로 등을 밀어 돌아보니 나이도 꽤 먹은 남성이었다. 미안한 표정이라도 지으면 넘어갈 일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 저절로 인상을 쓰고 뭐 하는 거냐고 해도 못 들은 척 지나가 결국 입에서 좋지 않은 말이 나가고 말았다. 뭘 바쁜 시간에 그 정도를 가지고 그러 냐겠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그런 짓을 하는 이들도 없고 나든 누구든 본의 아니게 타인을 밀게 되면 당연하게 미안합니다 든 죄송합니다든 하고 다닌다. 오늘 아침 경우 화를 낸 것은 나이도 육십이 넘은 데다 양복바지에 흰 남방셔츠, 그리고 정장용 구두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었기..
잊혀져 간다. 전부터 친구도 많지 않았지만 이제 점점 더 없어진다. 우선 내가 연락을 안하는 이유가 첫째고 나이들수록 서로 고집들이 본인도 모르게 강해지는데다 자식들이 출가를 해서 손주들이 일상을 차지하기도, 그리고 경제력이 있어야 만나서 식사든 한잔이든 할 수가 있는데 주머니가 늘 비어 누구에게 전화나 만남을 전할 수가 없음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블로그나 SNS에 풀어 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내 글이나 사진등등을 친구나 일부교인, 지인들이나 집안 동생들에게 보내는데 그도 가끔 상대를 잘못 알고 실수도 한다. 이 모든 일이 아직도 철이 안들어 그런데 아마도 갈 때까지 들기는 틀린거 같으니 그냥 참선수행이라도 배워보자. 종교를 떠나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이름이 알려진 분의 고백을 보고 든 생각이다. ..
참선수행이라도.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늘근 내가 내 보기에도 답답하고 한심하니 남들 눈에는 오죽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오늘 처음은 아니고 아마도 생각의 바닥에는 늘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 딴에는 왜들 저렇게 남들을 불편하게 할까 싶어 그러지만 그들도 아마 일부러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문제를 짚고 가는 것은 여기 마포학습관 아현분관에 빌린 책을 반납하러 와서 다른 책을 한 권 더 빌릴까 하다 메는 가방 무게를 줄인다고 명함지갑을 두고 나와 회원증이 없어 못 빌리고, 대신 모바일회원증이 있는 걸 알아 만들기로 하고 일간신문을 보다 이강옥 영남대명예교수의 "수행을 한 이후로 화를 내지 않게 됐다"는 기사를 보고 느낀 바다."차가 끼어들어도, 아내가 화를 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한다"라는 얘..
점점 더 복잡해. 2012년에 시작할 때는 `다음 블로그`였고 주욱 유지하다 몇 해 전에 `다음 티스토리`로 바꿔 친구도 다 끊어지고 일일 평균 백여 명의 방문객도 십여 명으로 줄었다. 그도 모자라 며칠 전에는 또 이상한 구도로 바꿔 이번에는 더 이상하게 만들고 말았다. 내가 내 블로그에 들어가서 내가 올린 게시물과 방문객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만들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고 기가 막히고 화까지 난다. 이제 될 수 있으면 화도 그만 내고 남 흉이나 탓도 그만하고, 물론 내가 먼저 남 흉을 보거나 탓을 해서 부딪쳐 보지는 않았지만 남들의 행동에 내가 혼자 화가 나고 견디기 힘들어했던 것은 사실이라 그럴수록 내가 더 힘들고 지쳐가니 줄여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제야. 물론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결심을 하고 여러..
그만 물렀거라. 며칠 전부터 겨우 그만하던 더위가 좀체 물러가기가 싫은지 계속 무덥다. 더위도 계속되는데 오늘은 근무도 신경이 쓰여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같이 기전주임으로 들어와 아마도 인건비를 줄이려고 3교대를 맞교대로 바꾸고 한 사람을 주간근무로 돌리고 보기 좋게 기전대리로 이름한 걸 무슨 직급이 높은 윗사람행세를 하고 자기 말이 법인양 지시를 한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삼 개월 동안 맞춰 줬는데 자기 기준으로만 일을 시키고 여기 법에 따르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부당한 건지 알지를 못하고 얘기를 해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만 하는데 오늘은 결국 못 참고 말았다. 아무리 퇴직금이 필요해도 내 양심을 속여 가며 일을 할 수는 없다. 사무실이고 기계실이고 대기실까지 아무도 치우고 정리를 하지 않아 건축면적 자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