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111) 썸네일형 리스트형 모두에게 풍요로운 가을 오늘 한글날이자 다시 찾은 공휴일에 아침 퇴근을 해서 이태원 사는 친구를 만나 곰탕팩 여섯개를 받아 가지고 돌아 오다 너무 무거워 근무지에 내려 놓고 고척동으로 들어가 냉장고에서 변해가는 밥과 김치를 꺼내 변한데 걷어 내고 끓여 반주에 맛있게 다 먹고 한잠자고 나와 연희동에서 아내 만나 구파발 롯데몰에 왔더니 사람 천지다. 모두 즐거워 보여 좋고 아내와 나도 좋게 지내면 좋겠다. 아들은 아들대로 지내게 일단 두고 보자고 했고. 저도 생각이야 있겠지만 아직 부모가 움직일때 제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일이 장래성도 없고 꾸준히 열심히 하지도 않아 조금 걱정이가는 하다.여기서 보이는 사람들 표정대로 모두 행복하기를 늘근사내가 바란다. 모두!-2026.10.9 구파발에서. "연희 나그네"-D + 5,..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늘근소년은 이 좋은 계절에 다시 구인을 흝어 보고 속을 태우고 있다. 모두 내 탓이지만 아파트, 공동주택의 주민들이나 소위 동대표와 입주자 대표회장님들이 정말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라면 자기들이 구인광고내고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고 뽑았으면 큰 잘못이나 주민에게 직접실수가 아니면 두고 보는 정도의 관대함을 바란다. 특별대우를 바라는게 아니고 기본적인 대우 말이다. 최소한의 의사표시도 못하고 기본업무도 자기들 뜻대로 고집을 하고 뭐라고 설명을 하면 불평불만이라고 하는 못된 짓들을 하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무언의 짓들을 하며 여기는 올해 용역회사도 바꾸고 관리소장도 네번을 바꾸고 과장도 세번 시설주임도 나까지 네번인지 다섯번을 바꾸는 짓들을 하고 있으나 어디 얘기 할데도 없다. 주민들의 왕국이라.여기 .. 어서 찾아야 하는데 9월 초하루 근무를 시작한 지금 근무지에서 더 있기가 불편해 이직을 통보하고 다시 새 근무지를 찾아야 하는데 요즘 구직란에 나오는데가 적고 또 거의 매번 나오는 아파트 위주라 조금 신경이 쓰인다. 이직이 한두번도 아니고 수도 없으니 내가 제일 큰 문제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모든걸 참고 지낼 수도 없지 않은가. 수긍하고 순응하고 지내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사람이 모두 같을 수도 없고.이번 근무지 아파트는 오십대 여성이 입주자대표인데 겉으로는 예의가 너무 바른데 소장에게 요구하는 일이 은근히 사람을 힘들게 하고 일일이 참견을 한다. 자기 영역이 아닌일도 모두 참견을 해서 소장도 과장도 주임들도 견디지를 못하고 스스로 가거나 눈에 나서 가는 경우도 있고. 아파트입주자대표가 무슨 큰 벼슬인양 하는 것이 우습지도 않.. 늘근사내의 肖 像. 아침 교대후 퇴근해 연희동으로 두달만에 혈압약 처방받으러 가는 늘근사내.매일 슬퍼서 눈에 눈물 주렁 주렁이지만 그래도 살아 간다. 대체 공휴일 나는 경제를 몰라 공휴일로도 쉬는 날이 모자라 공휴일이 토,일요일에 있으면 다음날 하루를 쉬는 '대체공휴일'제도가 우리 나라 경제에 어떤 득인지도 모른다. 다만 해당사항과 일도 관계가 없는 월급생활을 하는 나는 오늘 아침 교대한 젊은 과장이 어제 내가 전지작업한걸 빨간날은 쉬어도 된다고 가르쳐 주길래 그냥 내가 시간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한시간정도 한거야 하고 말았다. 그도 비교적 젊은데 전기과장이 격일제 근무로 온걸 보거나 예초기나 부로어 등등을 만지는걸 보면 주임에서 전기기사를 따가지고 온거아닌가 싶다. 기전주임이나 기전기사 격일근무중 제일 좋은 날은 공휴일이다. 소장이나 대표 일부 극성 주민 간섭받을 일도 없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도 쉬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만이 아닐 것이고.여튼 아.. 오늘 안식일 오늘은 우리 제칠일예수재림교 안식일인데 아침 퇴근을 해서 근무지에서 가까운 효창운동장도 볼겸 효창공원앞역 지상 꽃밭에서 나홀로 온라인예배를 드리고 효창운동장앞까지 올라가 겉만 구경을하고 내려와 이제 고척동 내 방으로 가는전동차 안이다. 교회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올해초 은퇴하고 일년을 더 연장한 김인상 목사의 다른교회에서 올리는 은퇴예배 참석을 위해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가서 그날 운전을 맡은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남자에게 몰상식한 봉변을 당하고 나왔는데 사태파악도 제대로 못한 목사, 수석장로, 여집사등등에게 출석정지를 당해 그뒤로 교회예배를 중단했다. 그리고 지난달 다시 나가려고 했더니 사과는 커녕 담임목사에게 못할 말을 하는 교인은 잘 되는걸 본적이 없다는 여성수석집사의 말에 아, 이 사람들은 예수.. 대책없는 늘근 사내. 8월에 부당해고를 시킨(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아파트에서 지노위에 보낸 해명서를 보고 그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하며 그 치졸함에 화가 치미는걸 누구에게 얘기라도 해서 풀수 없어 혼자 열이 올라 점심무렵 연남동경의선숲길 햇볕 좋은 벤치에 앉아 참치캔에 한잔을 마시고 점심무렵부터 아내 기다리다 다섯시가 되었고 합정에 오라는거 가지 않고 신촌수제비 한그릇에 또 소주한잔을, 길청소하는 분 김밥한줄 건네고 짧은 시간이고 낮에 전주도 있고 취해서 어여 고척동으로 들어가 쉰다고 지하철을 타고 신도림에서 1호선 갈아 타야 하는걸 노약자석에 잠이 들어 깨니 종합운동장이었고 그냥 돌아 가자고 다시 잠들었다 깨니 강남역. 그짓을 반복하다 결국 밤 열한시쯤에서야 인천가는 1호선을 타고 개봉역에 내려 보니 열두시 전인데 마을.. 나는 누구인가. 1954. 음 5.15 태어난 나는당시에도 서울이었는지 경기도 시흥군 신길리였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주소가 영등포구 신길동 147번지였다. 그래 내 본적이 되었는데 1960년도 우신국교입학 당시에는 해군본부 뒤 철조망으로 담을 두른 바로 아래 동네에 유일하게 우리집만 마당은 넓고 방세개 기역자 초가집이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이사를 했던 1968 중학교 3학년 이른봄까지 살면서 조금 창피하기도 했지만 국교 일학년 음 시월에 엄마가 病으로 돌아 가시기까지 아버지 혼자 미아리 하월곡동 종이공장 기관장으로 지금의 나처럼 격일제 근무하시면서 집안에 국수틀을 놓고 국수를 뽑아 대나무에 널어 말려 나무도마에 썰어 팔았던 기억도 있고 그래 나중에도 동네에서 국수집으로 불렸던 기억도 나는데 내 띠동갑 큰딸이 아니었으면.. 이전 1 2 3 4 ··· 5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