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4127)
첫차 타는 분들 어제 비교적 일찍 잠들어 오늘 새벽 잠이 깨니 두시 반쯤, 바로 잠이 들지도 않을거고 해서 양말하고 속옷빨아 널고 네시경 숙소를 나와 슬슬걸어 개봉역에 도착이 네시 반쯤이었는데 그 시간에 개찰구앞 의자에 전철을 기다리는 분들이 적지 않아 놀랐다. 그래 늘근사내 사는게 힘드니 어쩌니 배부른 소리였구나 싶었다. 개봉역에서 구로방향 첫차가 05:20경인데 그렇게 일찍들 나와 기다리고 첫차가 도착하니 사람이 많아 겨우 탈 수가 있었다. 신도림역에서 2호선 환승해 홍대입구역으로 오는 차안에는 사람이 없어 텅텅 빈채로 이제 내린다. 그냥 연희동집앞에 가 돌아 보고 마지막 근무하러 가려고.지금 시간 다섯시 오십분.-2026.10.30 홍대입구역에서 "연희 나그네"-D + 5.090
기막힌 사연. 오늘 이른 아침,퇴근길 고척동 내 거처 동네 마을버스에서 내려 단골 가게가 문을 열시간이 되지 않아 인도 술집앞에 큰가방을 놓고 편의점에 잠깐 다녀 왔는데 가방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귀신 哭할일이 생긴거고 그 가방에 남들에게는 소용없는 물건들만 있었는데, 동네 일대를 돌고 고물상까지 가봐도 없어 숙소로 들어가 맑은물 한병을 마시고 싫컷자고 일어나 나와 가방놓았던 장소에 가보니 바로 그 술집이 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데 밖으로 향해 달린 카메라가 보여 사정얘기 하고 돌려 보니 어느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서는 바로 가방을 싣고 가버리는 모습이 잡혔다. 자 저 여인을 어떻게 찾나가 숙제로 남았다.-중략--2026.10.29 2호선 신촌역에서. "연희 나그네"-D + 5,089
내 인생의 동료들. 1954. 음5.15 태어나2026.10.28 일 지금까지 살아낸나 朴濟永이는 1954,1960운명이 짧았던 낳아준 엄마와,1979 당시에 오래 사시고 여든여섯에 돌아가신 할머니를닮았나 오늘 지금 칠십셋이 되도록 살고 있다.1963부터 키워주신 엄마가9.7 돌아 가시고 엊그제 10.24 49재가 지났다.그리고 1982.음1.1 돌아 가신아버지를 10월 그믐날화장을 해 소위 허가 받은 곳에 뿌려 드리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나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버지께 죄송스럽지만 내가 가기 전에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싶어 몇해 전부터 해오던 고민중 하나였다.아버지, 엄마 힘겨운 일생이었지만 이제 다 잊고 편하게 쉬세요.아들로 태어나 不孝만 했던 맏아들이 후회합니다.용서하세요.-2026.10.28 고척동에서. 박제영이 ..
다 내 잘못이란다. 아들 이라는 넘도 아내라는 여자도 지금 우리집 상태가 전부 내 잘못이라는데 그럼 저희들은 뭘 그리 잘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나이 많은 백수에게 시집와준거하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여유있게 벌어다 주지 못하는거 가지고 살림하는거 하고 두가지는 할말이 없는데 그 여인네 표현대로 성질 못된거까지 아, 제일 큰문제 아들넘을 제대로 못키운거 까지. 그런 자기 성질은 무지하게 좋고 자식은 지 애비나 에미에게 얼마나 잘 했는지 묻고 싶다.공개하는 일기에 이렇게 집안 못된거나 올리는 걸봐도 애비가 제일 쪼잔하고 문제다. 그런데 애비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게 장가간 뒤로는 먹고 사는거에 매어 뭐 하나 내맘대로 하고 살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만 해야지 온 나라에 소문퍼지면 제대로 가지도 못하리.1979.10..
父子知間. 서른넷에 낳은 아들이 올해 마흔인데 애비가 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애비를 피해 다닌다. 자식이라고 하나인데 내 인생이 이렇게 虛할 수가 없다. 세상에 뭐한 말로 지금도 애비가 버는걸로 사는 자식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말이다. 결국 내 자식 흉이 되지만 애비가 저 보기에 그렇게 엉망이면 거의 같은 처지의 친구네 아들처럼 공부해 취직해 아마도 장가도 갔을 것이고, 지 부모하고 緣을 끊고 사는 넘처럼 그렇게 살던지 그도 아니고 지 엄마하고 살면서도 지맘에 차지 않으면 말도 안하고 해주는 밥도 안먹어 그냥 버리게 하고 사는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애비는 매일 매달 매해 내가 챙겨 먹고 사는데. 지엄마가 싸주는 반찬도 내가 가져다. 열심히 벌어 모아도 시원치 않은데 버는대로 쓰고 미리써서 갚는날이 되어야 ..
무엇이 불안한가. 내일, 벌써 49재가 되는 엄마 산소에 형제들과 가기로 했고 시월말일 날에는 아버지를 이장해 화장모시기로 하고 또 이곳 근무지도 그날까지 근무를 하고 그만두기로 했으니 모두가 편치 않아서겠지.사람이 살면서 좋은일만 있는 이들이 있을까 마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幸福과 不幸의 차이가 나겠지.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당사자의 노력여하에 따라 누가 덜하고 더하는 차이는 있으리라. 늘근사내, 인생의 마감을 준비해야 할 연세에도 이렇게 감정의 기복이 심한걸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걸 또 자식이 닮아 속상하고. 오늘밤 이제 그만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자. 내일 오전 형제들 만나 엄마께 가야하지 않는가.-2026.10.24 날짜가 바뀔 시간 가까이에. "연희 나그네"-D + 5,084
부부가 아프다. 서방은 또 일자리이동을 해야 해 아프고 아내는 자주 아픈데 1984.2월에 만날 때부터 체력이 약해 그러니 마음이나 편하게 하는 방법뿐인데 남편도 아들도 둘이 똑같으니, 그런데다 그 서방도 떨어져 사는지 만 6년이 지나 힘이 들고. 아내는 아파도, 약도 병원에도 가지않으니 더 오래 가는데 코로나 기간에도 주사한번 맞지 않은 양반이라 그냥 보는 수밖에 없어 더 딱하다. 일단 연희동집으로 가고 있다. 쌍화탕 한병 사가지고 올라가야지.-2026.10.23 홍대입구역에서. "연희 나그네"-D + 5,083
역시 그렇군. 지난 월요일 졸업년도로만 54년 9개월만에 만났던 고교동창은 얼굴 한구석 옛날이 남아 있는거 외에는 만나기 전 전화목소리도 낯설었고 만나서 갔던 식당도 오랜만에 만난 늘근사내끼리 갈 장소도 아니다 싶었듯이 역시 며칠 주고 받은 메시지와 카톡이 더 낯설게 만들어 아, 그냥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서로 살던대로 사는게 좋겠다는 결론이다. 가뜩이나 세심한 성격에 이일 저일 겹쳐 있는데 손윗사람같은 훈수까지 받으니 아니구나 싶어 만나기 전으로 돌릴 수는 없으니 카톡은 그만이고 전번만 남겼다. 그래도 그뒤로 온 카톡이 나의 비위를 거슬리고 말았으나 내가 보고싶었던 친구니 이 정도로 말자.일과도 끝나고 이제 저녁을 먹자.-2026.10.22 용산근무지에서. "연희 나그네"-D + 5,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