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에 종사한 지 14년이 지나 15년째고 그전 같은 분야의 다른 일을 시작한 것까지는 22년이 지나 23년째가 된다.
1987.7.3 서른넷에 장가를 가서 아는 사람 없는데서 아무 일이라도 해서 살겠다고 태어나서 살던 서울을 떠나 부천에 방을 얻고 살림을 시작했다. 대기업 무역부 사원으로 근무를 하다 나이가 들어 사직을 하고 노처녀가 된 아내를 만나 직장 생활할 때 보았던 좋은 대학 나온 남자사원들의 쪼잔함을 보고 직장인이 별로라고 그 좋은 자리 마다하고 칠 남매 장남에 직업도 학력도 벌어놓은 것도 없던 내게 눈이 멀어 시집을 온 아내가 아니었으면 아마 혼자 지냈을 내가 장가를 갔다. 다행히 장남이라도 그 당시 엄마는 경제력이 있으셨고 형제들 누구도 나를 도우면 도왔지 기댈 사람도 없어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경우였다. 그래 부천 심곡동에서 아들 낳고 이년을 지내고 역곡 괴안동 조공시장 동네에 자리를 잡고 장똘뱅이로 갖은 고생을 해서 겨우 먹고살고 8년이 지나 부천살이 10년을 접고 1997 봄 서울 이문동 외대 앞 동네로 들어왔다. 부천에서 겨우 먹고살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전셋집과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지만 역곡에서 8년의 장똘뱅이로 장사에 눈을 떴다고 했던 생각은 착각이어서 일 년 반동안 가게 보증금의 절반을 털어 먹고 자신감까지 무너져 1999 아내가 따로 냈던 가게까지도 마트가 개인으로 넘어가 내주고 새로운 직업도 갖지 못하다 2,000년이 되어서야 외대 정문에서 가까운데 두어 평 가게를 열고 당시에 한가하던 도로에 좌판까지 벌여 놓고 옷과 모자 가방을 팔다 일 년 여가 지나 생활비도 나오지 않게 되니 결국 아내에게 맡기고 내가 벌이를 시작을 하게 된다. 그런데 주위에 할만한 일을 소개해 주는 친구나 지인도 없어 혼자 알아보고 시작을 하는 바람에 지금 시설관리 전의 8년을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다. 아무 일이나 해서 먹고살려면 체력이라도 좋거나 理財에라도 눈이 있어야 하는데 內外가 모두 어두워 더 힘들게 살았다. 그렇게 그 가게를 2004 이대 앞으로 살림집을 옮기고도 2012까지 아내가 멀리 다니면서 겨우 용돈벌이를 하다 그만두고 그 뒤로 내 외벌이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힘은 들지만 결혼 후 형제나 남들에게 빌리지 않고, 물론 가끔 내가 최소한의 체면 유지비가 필요해 친구나 지인들에게 아내 몰래 적은 액수를 빌려 쓰고 갚는 거 말고는 내가 버는 걸로 살아가고 있다. 돈 때문에 불편하기는 하고 사람이 성인으로 살면서 최소한의 사람노릇을 못할 때 힘은 들지만 이대로 움직일 때까지 벌어먹고 살아갈 것이다. 올해부터는 체력도 떨어지는 걸 느끼지만 그래도 버틸 것이다.
이 직업도 어디 한 곳에 자리를 잡았으면 좋을 텐데 남들 비위를 맞추지 못해 여기저기 떠도니 뭐 한 말로 그 텃세에 더 힘들지만 이도 이대로 지내야지 어떨 도리가 없고.
- 2024. 6. 29 오늘 밤에 비가 많이 온다고 해 긴장이 된다.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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