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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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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꿈을 꾸는가. 그래 꿈을 꾸고 있구나.오늘 새벽에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꿈을 꾸다 겨우 일어날 시간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이게 뭐이고  요즘 특별한 계기도 없이 왜 갑자기 공황장애 아닌가 하는 상태까지 왔는가 생각을 해봤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심지가 굳지 못하긴 했지만 십여 년 전 우울증이 있을 때 보다 더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을 블로그나 SNS에 소상히 올려 만천하에 공개를 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톡으로 보내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였지만 상대들에게는 그게 스트레스였나보다. 결국은 내가 이렇게 바보다 하는 지경에까지 오고 말아 아무리 나를 위해 하는 얘기라지만 듣기 좋지 않은 말을 듣고서야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과 안 되겠다 속 내보이는 것도 줄이고  공개도 줄이는 걸로 가..
왜 이럴까. 하늘이 온통 진회색으로 덮이더니 빗물인지 진눈깨비인지 떨어 지기 시작을 했다. 가뜩이나 늘근소년 심신이 가라 앉는데 더불어 함께 놀자고 하는가. 근무날 근무중에도 쉬는날 쉬는 낮이나 밤에도 순간이 갑갑한데 아직은 주저앉으면 안되니 악을 쓰고라도 일어 나야 한다. 잠은 계속자고 밥도 먹고, 오늘 새벽에는 잠도 조금 힘들었지만. 우리 동창녀석 말대로 한씨가 윤씨등에 칼을 꽂는 세상인데 뭔 시덥잖은 옛 시절을 가지고 궁시렁대냐고. 그래 나라일도 아니고 다늙은 꼰대 일상을 가지고 뭐하는건지. 그래도 남들 보기에는 한심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으니 어쩌랴. 한순간이 버겁고 견디기가 힘들다. 동생말이나 지인들 말대로 이제 내려 놓으라는데 내려 놓을거나 있어야 말이지.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어 보자.- 202..
내는 누구인가. 겉으로는 온나라 온국민이 대통령의 무분별한 행보에 속이 뒤집혀 부글부글 하는걸로 아는데 나같은 무지랭이는 내 삶에 지쳐 겨우 老軀를 버티고 있다. 解脫을 하고도 남을 연세에 세 食口 호구도 버거워 躁鬱症이니 공황장애니 지청구를 날리고. 오늘 우리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교교동창의 부름을 받고 한잔을 하러 가는 길이다. 성질도 모나고 돈도 못벌어 년중 누구의 전화나 연락도 없는데 이거이 웬떡이냐 씬나서 나가는 길이다. 좀 전 지하철 안에서 받은 신촌현대 물품보관함 맡겨 놓은 반찬찾아 가라는 문자, 문닫기 전에 못갈거 같고 반찬이 일도 없으니 우선 가서 찾고 봐야지. 지하철에는 새벽부터 지금까지 老益丈들이 지천이다. 내가 그래 그런가 여유로움보다는 피곤한 언굴들. 늘근소년, 당신 걱정이나 하슈.- 2024. 1..
시절이 하 수상하니. 지난 3일밤 경천동지할 소식을 옥탑에서 알았다. 저녁과 한잔을 하고 잠이 들었다 깨어 폰의 포털을 눌렀을때 비상계엄 어쩌고 나오는걸 보고 이거 뭐지하고 있는 동안 내가 거는 전화도 열번에 한 번 받을까 하는 마나님의 전화를 받고 웬일이슈, 뉴스를 봤느냐 물었다. 오잉 벨일이네. 아들이 전화를 했다고. 그렇게 비몽사몽 지내다 잠을 자고 새벽에 해제했다는걸 보고 다음날 출근하니 동료는 밤새 잠을 못잤다고 했다. 내가 한참 젊었던 1970년대와 그 전 1960년대에 비상계엄과 위수령을 발령해 국회문을 닫고 각 대학에 탱크와 군인들이 주둔을 하고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정권유지를 하든 박통은 내가 제대를 했던 1979 여름이 지나고 그 해 10월 결국 부하의 총탄에 비명횡사를 하고 ..
人生의 正道는 무엇인가.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 사람도 만나고 생각도 못한 여러 경우도 만나게 되는데 나같은 경우는 지금껏 제대로 살아 보질 못해 칠십이 되어서도 후회도 미련도 버리지를 못하고 산다. 그나마 하나둔 자식도 바로 잡아 주지를 못하고 애비는 둘째고 엄마말도 안듣는다는 소리나 하고 다니고. 하는 일에도 웬만큼 만족은 하지만 동료들의 기본 인성을 흉보고 그들 보다는 자신이 잘한다고 착각이나 하고. 다만 그들보다 일을 더 잘하지는 못하지만 내 몫은 꼭하고 일외적인 공동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은 따지지 않고 내가 하는데 그걸 가지고도 뭐라 하는 바람에 가끔 말로 충돌을 한다. 그렇지만 아내나 주위 사람들이 그도 내 잘못이라고 하니 더 할 말은 없다. 어제부로 이번 근무지 6개월이 되고 6개월을 더 견디면 大望의 퇴직금을 4년만..
오늘은 쨍. 아침 퇴근 할 시간에 교대자가 오지를 않아 삼십여분을 기다리다 주간근무자가 출근을 하고 왜 퇴근을 하지 않았냐 물어 글쎄 출근도 안 하고 전화도 없어 기다렸다고 하니 나를 기다렸냐, 아니 김주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제 얘기 안 했냐 김주임 오늘 주간 휴무라고. 아뿔싸 그제야 생각이 났다.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통 안 하던 일이 생기고 더 문제는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거나 불안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나이에 뭔가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 꿈도 보통 때 하고 다른 꿈을 꾸고 꿈에서도 놀라고 그러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 정도 나이가 되면 너나없이 한 가지 걱정이 치매나 고혈압으로 인한 발병인데 하나는 가족력이 있어 약을 먹고 있고 하나는 미리 약을 먹어서 방지를 할 수도 없으니 그저 매사 ..
비바람이 분다. 어제 비번 날 퇴근 후 상봉역에서 춘천행 전철에 올라 북한강가를 달리는 경춘선 안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 주기에 충분했다. 춘천역에 점심시간에 내려 미군부대가 떠난지 오래인데도 담장을 치고 그대로 방치중인 정문이 아닌 반대편 의암호쪽으로 나가 소양강처녀상쪽으로 걸어 가다 오래전 방영한 '겨울연가' 안내판과 한국전쟁 학도병 참전기념비옆 나무벤치에 앉아 숙소에서 가져간 大자 캔맥을 천천히 마시고 일어 났다. 노란색 빨간색 아기단풍 구경도 하고 소녀상쪽으로 가는데 길 한쪽은 속초행 전기철도 공사중으로 울타리를 치고 막아 경관을 버려 놓았다. 소녀상 주위 잠깐 둘러 보고 서울로 돌아갈 기차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거꾸로 걸어 춘천역에서 14:07발 경춘선을 타고 출발을 해서 한잠이 들었다. ..
찬바람이 서늘하다. 우선 어제 얘기를 마저하자.학습관을 나서 집으로 가는데 혹시 몰라 찬통을 가지고 올라갈까 쇼핑센타에 보관을 할까 전화를, 쇼핑센타에 두라고 해 두고 천천히 걸어 연대앞을 지나 현대백화점쪽으로 가는데 신촌으로 나갈까 물어 아니 그냥 갈래 하고는 지하철을 타고 대림에서 갈아 타고 장승배기역에 내리는데 지하철 타러 내려 오는이들이 전부 우산을 들었다.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 문이 열리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트용 쇼핑가방을 머리에 쓰고 걷는데 금방 바지아래와 신발이 물에 젖어 얼른 동네마트까지 걸어가 콩나물과 대파 떡국떡 등등을 사가지고 옥탑에 들어가 소금간만 하고 콩나물국 끓여 파숭숭 썰어 넣고 햇반과 이찌고뿌, 서너시에 잠들어 서너시간 자고 일어나 짜파게티 끓여 먹고 다시 또 자고 자정무렵 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