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100) 썸네일형 리스트형 과거 훑기. 눈보라가 몰아 치다. 내일이 경칩이라는데 오늘 아침부터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기는 올해 뿐이 아니고 매년 그냥 순하게 봄이 오지는 않았지. 올라가던 기온이 느닷없이 내려 가기도 하고 오늘처럼 눈이 내리기도 하다 서서히 봄이 왔다. 그렇게 산수유가 피고 사월말이나 오월에 목련이 필 때까지 봄인데 요즘 추세는 봄은 짧아지고 여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그리고 폭염이 이어지고. 기후변화가 무섭게 다가 오는데 인류문명의 발달로 지구가 파괴되는건 아닌지 싶다. 그건 그렇고 24시간 격일근무를 오래 하다 3.1부터 3교대로 바뀌고 오늘 처음 당직자와 함께 주간근무를 하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24.6.1부터 맞교대를 했어도 한번 마주앉아 본적도 없이 사는 곳도 모른채 지내왔다. 내가 와서 먼지 쌓인 기계실 전기실 우리 대기실을 수년.. 여름 휴가와 단풍구경. 올해 유례없는 무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단풍도 늦어진다는 뉴스를 오늘 보고 든 생각, 단풍구경도 여름 휴가도 가본지가 언젠가. 기억도 없는데 한번 몇 해 전인가 아들이 뭔 생각으로 세식구 여름 휴가를 가자고 해서 날짜를 맞춰 강원도 속초 장호항이란데 가서 이틀 동안 민박을 하고 왔었다. 그 뒤로는 서로 생활도 다르고 여유도 없어 그만이었고. 아마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거 기억이나 할까 모르겠다. 저 자신이 힘드니 무슨 생각이 날거며 부모에게 관심갈 여유나 있을까 싶고 제발 지가 하는 일이 안정된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엄마가 막내 동생과 십년을 병원에 계시니 휴가도 단풍놀이도 어불성설이고. 괜한 생각에 빠져 봤다. 이 정도 생각도 못하고 사는 내가 나도 딱하다. 정신차리자 늘근 소년... 오늘 할머니 제삿날. 나의 할머니에 대한 어려서의 기억은 90 º로 굽은 허리와 이가 하나도 없어 입이 홀쭉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든 모습과 저녁 먹을 때가 되면 동네 친척집마다 돌며 진지 잡수시라고 찾아다니던 일이다. 집성촌이어서 열댓 가구가 한동네 살았는데 할머니가 말(마을)을 다니던 집은 서너 군데로 정해져 있었고 그 집 안방에 앉아 가만히 계시는 게 일과였다. 식사할 때가 되면 스스로 집으로 오시면 좋은데 왜 모시러 갈 때까지 친척집이라도 남의 집 안방에 앉아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1960 가을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삼 년 동안 큰손녀가 살림을 할 때는 손녀 보기가 딱해 그럴 수도 있으셨다 해도 그 뒤 지금 엄마가 1963 새로 오셔서 살림을 한 뒤로도 그랬으니 어찌 보면 눈치가 없으셨던.. 추석 전날에. 오늘 아침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데 평소 휴일보다 한가하고 텅비다 시피했다. 아마도 대중교통으로 귀성을 하는 이들은 이미 갔거나 아니면 낮이나 오후에 출발을 하겠지. 서울태생에 맏아들인 나는 학생시절이나 그 후에도 귀성을 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물론 부모님과 식구들, 그리고 집성촌이라 친척들도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독자라(삼촌이 있었지만 신혼이던 6.25에 행불이 되어) 사촌도 육촌도 없어 조금 외로운 편이어서 더 그랬을테지만. 할아버지께서도 독자에 누이들만 계셨고. 그리고 늦게 장가를 가서는 지금 엄마도 미국에 가서 계셔서 우리가 가을부터 겨울 끝 날 때까지 여섯번의 기제사를 지내느라 버거웠기 때문에 더 그랬다. 2010년 까지 지내다 그만 두었는데 그 전에도 증조 두분은 잔만 올리기도 했고. 왜냐 하면.. 늘 혼자. 오늘은 혼자 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했다.우리 형제 사녀삼남중 제일 맏이인 큰누이는 1992 음 팔월초하루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일찍 돌아 갔다. 1942생이니 겨우 쉬흔하나에 사녀일남중 큰딸 하나 그 전해에 시집을 보내고 막내인 아들은 중학생이었다. 큰누이는내가 일곱 살 1960년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해 가을에 삼녀이남을 두고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 가시는 바람에 당시 나하고 띠동갑 열아홉 살 큰누이가 살림을 하게 되었고 내 아래 남동생 1958은 겨우 세 살이었다. 본인도 일찍 떠나고. 아버지는 역시 말띠 겨우 마흔셋이었고. 그렇게 오 남매를 낳아준 엄마를 보내고 맏누이가 살림을 한지 삼 년 후에 지금 백 살이 되셔서 병원에 계신 우리 엄마가 고3짜리 딸하나 키우다 아들이 부.. 오늘 음력 오월 보름날. 오늘 음력 오월보름날 늘근소년이 태어난 날이다.내 생일이라 나는 태어날 때 기억이 없지만 가족 중 제일 기억을 잘해줄 엄마는 내가 일곱 살이 되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우신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던 해, 1960 가을 음 10월 스무날에 세 살짜리 막내아들과 세 누이 오 남매를 두고 知病으로 돌아가셨고 저하고 띠동갑 아버지께서는 1982.1.1(1981, 음 12.6)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역시 띠동갑 맏누이도 1992 여름에 뇌출혈로 역시 오 남매를 두고 가서 내 생일들은 기억을 했지만 나의 태어난 時를 아무도 기억을 못 했다. 네 살 아래 동생은 내가 아버지 하고 영등포시장에를 다녀와서 해가 뉘엿 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던 시간 집안 마당에 들어 서니 아기울음소리가 나고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던 기억이.. ㅇ 우리 엄마 1925년생인 우리 엄마가 올해 100세가 되셨다. 2014.10 월에 지금 주로 계신 신길동 성애병원에 입원을 하셨으니 만 9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처음 입원은 교회에 가셔서 계단을 내려오시다 넘어지셔서 무슨 이상이라도 있을까 하고 검사를 받으러 걸어서 들어가셨던 것인데 연세가 있으셔서 그만 환자가 되셨고 그 뒤 걸음이 어려워지고 차츰 말씀과 식사가 줄다 아예 말씀도 식사도 못하시고 침대 위에서 꼼짝을 못 하시게 되었다. 식사도 대용식 캔으로 드신다. 그런데다 요양병원에는 보내드리지 않겠다는 간병을 전담하는 막내 남동생의 결심으로 해당병원에 두 달을 계시고 병원을 옮겨 한 달을 계시다 돌아오시는 반복을 하고 있고 그 막내아들도 올해 환갑이 되었다. 칠 남매 중 맏누이는 돌아 간지가 32년이고 그 아.. 이전 1 2 3 4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