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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오늘 할머니 제삿날.

 

 

 

나의 할머니에 대한 어려서의 기억은 90 º로 굽은 허리와 이가 하나도 없어 입이 홀쭉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계시든 모습과 저녁 먹을 때가 되면 동네 친척집마다 돌며 진지 잡수시라고 찾아다니던 일이다. 집성촌이어서 열댓 가구가 한동네 살았는데 할머니가 말(마을)을 다니던 집은 서너 군데로 정해져 있었고 그 집 안방에 앉아 가만히 계시는 게 일과였다. 식사할 때가 되면 스스로 집으로 오시면 좋은데 왜 모시러 갈 때까지 친척집이라도 남의 집 안방에 앉아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1960 가을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삼 년 동안 큰손녀가 살림을 할 때는 손녀 보기가 딱해 그럴 수도 있으셨다 해도 그 뒤 지금 엄마가 1963 새로 오셔서 살림을 한 뒤로도 그랬으니 어찌 보면 눈치가 없으셨던 것이다. 그 집에서도 저녁을 먹어야 했을 텐데 매번 저녁을 드리기도 그랬을 테니 얼마나 곤란했겠는가. 그리고 더 어려서의 기억은 내가 다섯 살 무렵 허리가 그렇게 굽은 할머니께서 나를 업고 동네를 다니시다 나하고 동갑내기 친구의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이놈 다섯 살이나 먹은 놈이 할머니 등에 업혀 다닌다고 나무라는 흉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뒤 그만 업혀 다녔는지는 기억에 없고. 그리고 그 할머니의 왜소한 뼈대와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맏손주인 내가 그대로 닮아 국교시절에는 나도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 등이 약간 굽었다. 그래 커서 남방셔츠나 와이셔츠를 입으면 가슴에 골이 접혀 보기가 싫었다. 2015년 담배를 끊고 그동안 주기적으로 앓았던 躁鬱症(조울증)이 없어지기 전까지 우울증 기간에는 예의 꼼짝 안 하는 일이 이어지다 그 뒤는 쉬는 날 여기저기 잘 돌아다녀 친구나 지인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그도 힘이 들어 많이 뜸해졌다. 할머니가 그러셔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덟 살에 할아버지가 삼 남매와 색시인 할머니 놓아두고 집을 나가셨는데 할아버지 당신 부모까지 땅한평 없는 집에서 보통의 경우는 며느리가 일을 하고 살림을 꾸렸을 텐데 할머니는 아무것도 안 했을 테니 그 어린 아버지가 얼마나 더 힘이 들었을까 싶어도 살아생전 한 번도 아버지나 어머니 원망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성겨도 체격도 닮지 않고 내 아래 1958 동생이 닮아 평생을 똑바로 살고 있다. 남매도 저들 아버지를 닮았고. 

그렇게 맏손주인 나를 누이들과 차별하고 끔직하게 대하신 할머니는 1970년대로는 장수를 하셨는데 손주인 내가 1979년 7월에 제대를 하고 얼마 있다  음 8월 스무날 바로 우리 엄마 생신날에 여든여섯에 돌아가셨다. 오늘 저녁 자정 지나 할머니 제사인데 보통들 돌아가신 전날이 제사로 알지만 원래는  돌아가신 날 자정이 지나고 첫새벽 첫 시간에 지내서 통상 전날 지내는 걸로 알고 있다. 이른 저녁에  지내려면 당일이 원칙이지. 굳이 따지자는 게 아니고 뜻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2010 부터 기제사여섯번과 명절제사도 廢해서 장손이 면목이 없지만 이렇게 날짜는 기억을 하고 있다.

할머니께서 손주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얼마 후에 만나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지.

 

- 2024. 9. 21 음 8월 19일에 근무지에서 큰손주 濟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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