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월 친구부인 소개로 만나 그해 7.3일 지금은 오래전 없어진 '규수당예식장' 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맨땅에 헤딩하듯 살림을 시작할 때 나이배기 신랑은 직업도 없었고 그래 가끔 날일이나 다니며 벌어 겨우 먹고 이년여를 보냈다. 그러다 1989년 봄에 신부 친구 남편(그들은 제나이에 결혼은 했고 신랑인물과 체격은 좋았지만 생활력이 제로인 내동갑)이 알려준 소사구 괴안동 신앙촌입구 조공시장 윗길 조공아파트 석축아래 공간에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이 생기고 노점이 들어 서는걸 알게 되었지만 그 자리도 열군데가 조금 넘고 남은 자리가 딱 한군데 있어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자리들중 두세군데만 과일,채소,생선장사를 하고 나머지는 잡아만 놓은 곳이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아내가 새벽에 부천 과일깡에 가서 문건을 해서 택시에 싣고(양이 작아) 오면 내가 아들 안고 기다리다 과일 받아 좌판에 진열을 하고 팔았는데 일주일을 해보니 팔리지도 않고 까먹고 있어 바로 접고 동대문 도매시장에 역시 아내가 가서 물건은 해다 팔기 시작을 했다. 그런데 앞가게들에 우리가 파는 품목이 새로 들어 오면 양보를 해서 품목이 몇번을 바뀌다 결국 당시 유행하던 그릇이나 집안 소품인 수입품을 받아다 팔기 시작을 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나를 데리고 남대문 시장에 가서 수입품 도매상가를 돌고 가르친 다음 내가 혼자 새벽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해다 팔게 되었다. 그런데 아래 아파트 상가에 수입코너가 있었고 그 가게는 그릇이나 인테리어 용품이 아닌 식료품 위주였지만 내 나이 정도 사장과 내가 그 시장 노점자리를 잡기 전 아내 친구네 차에
물건을 조금 싣고 돗자리를 깔아 팔고 다닐때 알게된 부인네 가게였다. 그렇게 노점장사들이 자리가 잡히니 원래 상가 장사가 잘 안되든 것을 노점때문이라고 상인들이 소사구청에 진정을 넣어 단속을 나오기 시작을 하고 한번 나오면 노점물건과 진열대 등등을 전부 치우고 사진을 찍어야 철수를 했다. 가고 나면 다시 피고 물건 놓고 장사를 하는 일이 그 후 몇년을 지속되었지. 그렇게 고생해 먹고 살고 나머지는 모아 바로 옆자리 나가는 이에게 사서 옆으로 넓은 가게가 되고 그쪽은 아내가 동대문시장 숙녀복을 해다 팔기를 1997 봄까지 만 팔년을 하고 그해 서울로 들어 오게 되었다. 수입코너가 너무 많이 생겨 이득을 볼 수가 없어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다른 노점들, 생물이나 과일등을 판 집들은 집사고 차사고 고생한 보람이라도 있었지만 우리는 겨우 먹고 살고 올라 올때 자리 두군데 팔은거 밖에 없었다.
그도 이문동 이경시장 세평짜리 얻어 말아 먹고 말았지만. 그렇게 고생고생 삶을 이어온 우리가 이제 나이 들고 황혼으로 접어 들었다. 내는 2002부터 월급받는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일 할 수 있는건 좋지만 너무 여유 없는게 힘겹지. 그래도 열심히 벌어 먹다 가야지.
-2026.4.12 근무지에서. "연희 나그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아내에게 고마움 전한다. 남은 삶 함께 잘 지내다 가자 여보!)
D + 4.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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