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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 더위가 정점이다.

 

 

 

피서철이다.

보통 7월말부터 8월 열흘까지가 여름휴가의 최적기이고 너도 나도 옆집도 앞집도 보따리 챙겨 내 차를 끌고 떠나고, 일반 직장에서는 아예 회사문을 닫고 전직원이 일시에 휴가를 떠났다 돌아오는 문화가 아마도 1990년대 초부터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내 차를 장만하기 시작하고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며칠치 음식과 기초 살림살이를 싣고 길에서 길게는 10여 시간을 허비하고 주로 동해안으로 고래라도 잡을듯이 떠났었다. 당시에 부천 역곡 괴안동 조공아파트(조선공사 시공)동네에서 당시 젊은 주부들에게 유행하던 `수입코너`를 하던 우리는 4월무렵에 작은 휴대용 아이스박스를 팔기 시작 8월말까지 한해 200여개씩을 팔았다. 주변 상인들이 보기에 돈은 우리가 다 번다고 했지만 35.000원정도 미국산 아이스박스를 한개 팔면(국산 내쇼날 제품은 품질이 좋은 만큼 가격이 비쌌다) 5,000원도 마진이 있었다.그런데 내차가 없어 남대문에서 택시나 용달에 싣고 왔는데 그 운임에 여러 가게들이 경쟁을 해 가격이 거의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마진이 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걸 놓지 못한 것은 생물(채소, 생선, 과일)을 팔아야 돈이 되는데 그건 또 원가에 상해 버리는걸 계산해 적절히 가격조절을 하고 팔아야 하지만 나도 아내도 그런 머리가 없었다. 그래 남보기에는 노점(박스로 지은)품목도 아니고 깨끗하기는 했어도 실속은 꽝에 고생은 두배 세배로 했고 열댓개 노점중 남들은 몇해만에 집에 차에 작은 건물까지 산집도 있지만 우리는 겨우 밥먹고 전세금 늘이고 1997 떠날 때 자릿값 받아 서울 이문동 외대앞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그 더위를 여름용품 파느라 남들 휴가 끝나는 8월 20일 이후에 며칠을 쉬는 장사를 8년을 했다. 그러다 1994년 여름 지금도 우리나라 여름더위얘기에 빠지지않는데 얼마나 더웠는지 남대문 도매시장의 여름상품이 품절이 되었었다. 그래 결국은 그해 여름장사도 다 못끝내고 8월 10일경 목디스크에 걸렸고 그 해 12월말까지 장사도 아내가 겨우 문만열고 나는 침과 지압을 3개월 받고 다시 일어 날 수 있었다. 그 원인은 내 다음 티스토리에 자세하게 올라 있다.

이제 현실로 돌아 와서 여기 근무지 지은지가 오래 되어 누수가 여러군데인데 이제 조금 참으면 가을이 오고 그도 멈출 것이다. 이번에는 참고 이겨 내어 퇴직금을 받아 보자.

 

- 2024. 7. 26 아침 퇴근을 기다리며. "연희 나그네" -

 

D + 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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