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習作日誌

"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비교적 날씨가 겨울 한중간 치고 좋아 기분도 좋아지는데 오늘 토요일과 내일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지금이 소한과 대한의 딱 중간이라 연중 최고로 기온이 내려가고 추울 때인데 외려 따뜻한 편이다. 어찌 되었든 庶民들은 덜 춥고 덜 더워야 좋은 거다. 선거를 앞두고 듣도 보도 못한 정치쟁이들이 우리를 피곤하고 구역질이 올라오게 하는데 설날도 다가오고 심난한 즈음이다.

 

- 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그렇게 장가를 가서도 바로 무얼 시작을 못하고 그 동네 친구신랑의 친구들 중 막일을 하는 친구를 따라 날일이 있으면 조수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노임을 받아 내 몫을 바로 주지 않고 결국은 떼어먹어 그 일도 그만두고( 그 부부가 십여 년 지나 집안 조카며느리의 이모와 이모부로 식장에 나타났다) 하루하루 보내던 중  아내가 장사라도 시작을 해보자 그래 내가 돈이 있어야 무얼 해보지 않겠나 하니 자기에게 돈이 조금 있다. 무슨 돈이냐, 오빠가 아이도 가졌으니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라고 준 돈이다 그러길래 돈을 받은 지 바로도 아니고 한참이 지났으니 돌려 주라고도 못하고 그래 당신 오빠한테 받은 돈이니 당신이 알아서 쓰라고 하고 다음날 그 돈을 가지고 돌도 안된 아들은 아내가 멜빵에 메고 나하고 동대문시장 제일평화상가로 가서 바로 가을이 올 시기라 아이들 가을 티셔츠를 도매로 떼어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사는 동네인 심곡동이 아니라 역곡 남부역에서 내려 신앙촌 입구 동네 부천시 괴안동 조공아파트(조선공사에서 지은)  조공상가 앞에 있는 연립의 마당에 내 지은 가게 중 수선집이 문을 닫아 그 앞에 조공상가에서 산 돗자리를 깔고 아이는 내가 안고 거기 새댁이 무릎을 꿇고 앉아 티셔츠를 개어 줄을 맞춰 놓고는 시장 보러 내려오는 젊은 새댁들에게 옷사라는 얘기를 하기 시작을 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걸 하기 시작을 한 거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나쁜 신랑이었는지 기가 막혀 말문이 닫히는데 그래 어차피 다 있는 그대로 풀기로 했으니 내 장점일 수도 있는 글자 한자 틀리지 않게 털어놓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한 팔자에 없는 장똘뱅이를 1989 봄부터 1997 봄에 서울 이문동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덟 번의 겨울을 그 자연발생된 작은 조공시장에서 눈물로 지나게 된다. 열세집의 노점 중 우리가 제일 먼저 포장을 치고 또 우리만 노점품목이 아니라 겁 없이 알루미늄 새시 박스를 설치했다 바로 상가 상인들이 진정을 넣어 철거를 당하고 협상을 해서 지붕과 기둥 그리고 앞에만 유리문을 남기고 옆면과 앞의 셔터는 철거하는 선에서 사용을 하게 되었다. 처음 자리는 4 ×8 짜리 합판으로 짠 좌판과 그 주위였지만 밥 먹고 아이 키우는 돈 외에는 전부 모아 조금씩 자리를 늘려 앞뒤는 좁아도 전면이 다른 가게 두 배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한쪽은 당시 유행하던 그릇 위주 수입코너와 나머지 한쪽은 수예품부터 시작해 서너 번 품목을 바꾸는데 앞 가게 중에 같은 품목이 들어오면 우리가 다른 걸로 바꿔 주느라 그렇게 되었고 끝으로는 숙녀복을 팔았다. 한데 여자옷이나 여성이 사용하는 품목은 동네장사의 경우 수다로 시작 수다로 끝이 나고 그렇게 해야 많이 파는데 우리 아내는 수다는커녕 말수가 적으니 어땠겠는가 둘이 고생만 하고 겨우 밥 먹고 아들이 국교입학 할 때에야 단칸방을 방 두 개짜리로 늘려 갔었다. 그 조공시장에서의 8년의 세월은 우리 부부가 눈물로 지낸 세월이었다. 그리고 아들이 3학년이 되면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되었고 아들은 서울 이문동으로 전학을 해서 청량초등학교 졸업을 했다.

 

- 오늘 여기까지.

'習作日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2) 2024.02.12
"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2) 2024.02.01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2) 2024.01.01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2) 2023.12.18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2) 2023.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