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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일요일 출근을 해서 교대를 하던 중에 어제 교대시간에 있었던 작은 소란이 오늘도 이어지고 결국은 십여 년 더 손아래 동료에게 패악을 당하고 말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老少가 싸우면 윗사람이 망신이다. 그 정도 인간인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내가 같이 근무하는 동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잘 지내왔다. 물론 중간에 이 친구도 만만치 않구나 느끼기는 했지만 요즘 내 동료와 사이가 괜찮아지니 그게 궁금해 몇 번을 물어 괜찮다고 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제 일지문제의 발단도 검침 숫자가 바뀐 걸 모르나 보다 하고 전달을 한걸 무슨 저를 우습게 여긴 줄 알고 대응을 해 설명을 했으나 지고집만 부려 내 목소리가 커졌었다. 그걸 오늘 아침 사과를 하라 해서 무슨 사과까지 할 일이야 그렇게는 못한다 했다고 결국 내게 늙은이가 왜 그렇게 사느냐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때릴 듯이 다가와 덤비기까지. 그래 너는 나이도 먹지 말고 그렇게 살다 가라 하고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나이 먹은 설움과 함께 나도 저렇게 살았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그렇게 가게도 접고 실직이 시작되고 다시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IMF사태가 이어 지고 동사무소에서 공공근로 신청을 받아 선발이 되어 아침을 먹고 동사무소로 나가 처음에는 비교적 젊은 축에 들어 무언가 내용은 잊었지만 조사를 시키다 며칠 후에 더 젊은이들이 들어와 나는 밀려나 동네 길가의 배수로 청소를 하게 되었다. 작은 집수정 뚜껑을 열고 담배꽁초나 이물질을 꺼내는 작업이었다. 아마도 그때쯤 이경시장 마트가 증축이 되어 아내가 한쪽의 개인코너 중 한 칸을 임대받아 아동복 가게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나마 가게를 하고 나는 삼 개월인가 공공근로를 하고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집에서 빈둥대기를 일 년여나 하게 되었다. 지나고 보니 역시 우울증에 접어들어서. 그러던 중에 이경시장 마트가 처남회사 소유에서 개인에게 넘어가고 아동복 장사도 시원치 않아 가게를 비우게 되었다. 그렇게 역곡에서 서울로 들어온 지 삼 년이 지나고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던 2000년을 맞게 되고 우리 아들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중학교는 추첨 입학인데 아내가 삼육중학교를 보내고 싶어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보게 하고 합격을 해서 이문동에서 멀리 태능까지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게 되었고. 그전 연초에 외대 앞 정문에서 가까운 건물과 건물사이 작은 공간(두 평쯤)을 역시 아내가 발품을 팔고 얻어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가짜상표를 단 남녀 공용 캐주얼 옷가게를. 동대문 운동장 담을 따라 밤에만 포장을 친 옷도매상들에게 옷을 받아다 팔았는데 꽤 잘 팔렸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이 유명상표 옷을 사입을 돈들이 없을 때여서 가짜라도 좋은 상표 옷을 입으려 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나마 한해쯤 하고 누가, 아마도 같은 옷가게에서 그랬겠지만 세무서에 신고를 하는 바람에 벌금을 물고 아내가 그 뒤에는 겁이 나 일반 숙녀복으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가게는 손바닥만 해서 가게 앞 차도에 자바라 세 개를 길게 펴고 당시 몇 해 전 역곡에서 장사를 할 때 모자가 유행을 해서 많이 팔았는데 다시 유행을 해 내가 동대문에서 모자를 해다 펴놓고 팔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2000년도가 가게 된다. 그리고 그해 삼육중학교 일 학년에 다니던 아들이 학교를 옮겨 달라고 조르기 시작을 했는데 그냥 그 학교를 다녔으면 나중의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지금쯤 평범한 생활을 할지도 모르는 생각을 해본다. 끝까지 말리고 보냈어야 할 것을. 하도 졸라 경희중학교로 가라고 하니 굳이 청량리중학교로 보내 달라고 하고 결국은 그 학교로 전학을 하고 말았다. 삼육중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면 목회자 자녀, 일반교인 자녀, 그리고 비교인 자녀들로 갈라지는 문제였는데 그걸 받아들이는 아이들과 우리 아들처럼 이겨내지 못한 학생들로 갈라 지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에 사시던 엄마가 밀레니엄버그가 오면 사용해야 된다고 쌀과 일회용 부탄가스, 라면도 포함되었었나 등등을 사놓으라고 하셔서 사놓고 한참을 썼던 생각과 엄마가 나오셔서 커다란 냄비에 뼛국물이었나를 끓여 머리에 이고 전철을 타고 신길동에서 이문동까지 오셨던 슬픈 기억도 난다.

 

- 오늘 여기까지.

 

우리 시설관리분야 만이 아니고 모든 직장이 그렇다지만 특히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속 시설관리 담당들은 나처럼 기본소양이 부족한 이들이 모여 오늘 같은 작은 소동이 꽤 일어 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문제이니 적응을 하거나 아니면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

 

-2023. 3. 5. 어제 잠깐 돌아본 서대문 안산 아래쪽 산책로에 봄이 오는 냄새가 나고 나무나 풀에 초록빛이 보이기 시작을   하고 꼭 한그루 봄꽃이 피어나 있었다. "늘근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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