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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오늘날이 흐렸는데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고 오늘 출근길 아침까지도 비가 내릴 듯하다 오후에 활짝 개였다. 그리고 비가 왔어도 기온도 내려가지 않은걸 보니 이제 봄은 봄인가 보다.

어제는 면회를 예약한 대로 나 혼자 고향 성애병원에 가서 삼 년 만에 병실에 들어서 엄마를 뵈니 점심 후라 잠이 드신걸 막냇동생이 형 왔다고 깨어 바라보시는데 내가 눈물이 나서 겨우 참고 엄마 휘근 아비 왔어요 알아보시겠어요 하고 눈을 보니 느낌에 알아보시는 거 같았다. 그리고 잠깐 있다 다시 잠이 들고 그렇게 몇 번을 하다 이십 분이 지나 다음 주에 다시 올게요 하고 나오는데 동생이 냉장고에서 무얼 꺼내와 검정봉투에서 짠지와 오이지를 꺼냈다. 나를 덜어 주겠다고 해 너나 두고 먹어라 반찬도 못해다 주는데. 형이 좋아하지 않냐고 많으니 덜어 주겠다고 보통 파는 단맛이 안나는 가락시장에서 사 온 거라고 했다. 아마도 잠실에 사는 동생네 제수씨가 반찬을 해다 주는 거 같으니 거기에서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내가 가끔 반찬을 해다 주었는데 어느 때인가 내게도 못해주는 인삼을 꿀에 재어 가져다 준걸 다른 데로 보낸 걸 알고는 그때부터 그만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체력이 약한 데다 내 반찬을 따로 해줘야 내가 직장에서도 먹어 그런 문제도 있고. 하여튼 내 생각을 하고 싸준 게 너무 기특했고 집에 와 얘기를 했더니 아내도 웬일이냐고 깜짝, 왜냐하면 큰형을 별로 좋게 생각 안 하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그래도 형은 장가도 안 가고 올해 육십이 된 막내가 참 애틋하다.

 

-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결국은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2002 월드컵이 열리던 해부터 그 어린것이 어디고 마음 붙일 데도 없이 지나게 되는데 엄마나 내 이야기만 들었어도 벗어나기가 좋았을 텐데 나를 닮아서인지 우리말도 안 듣고 그렇게 시간만 가게 되고 장사도 시원치 않아 2002 봄에 정보지를 보고 교보문고 본점에서 주차관리요원을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지게차 운전을 했다는 사람과 만나 면접을 봤고 결과는 그 사람이 뽑히고 나는 떨어졌다. 그래 다음날 광고를 냈던 용역회사에 전화해 일자리를 찾으니 여기 본부에도 주차관리요원을 뽑는다고 나와 보라고 해서 다음 날 잠실에 있는 향군회관에 가서 합격을 하고 근무를 하게 된다. 지금은 새 건물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본관과 별관 두 개의 건물이 있었고 두 곳에 예식장이 있어 휴일이면 주차차량이 많아 그 관리를 우리가 했다. 그래 주간근무지만 휴일이나 공휴일에는 쉬지를 못하고 평일에 하루씩 세 명이 돌아가며 쉬었고. 지상주차장이 꽤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 차량이 들어가는 입구에 초소가 있고 출구에는 향군직원들이 근무하는 정산소가 있었다. 그 입구 초소에 나이 많은 이들에게 검정군복에 검정 팔각모와 현역시절에도 매보지 않은 목 앞 스카프까지 매고. 당시의 향군회장이 이상훈 예비역 대장이었다. 그리고 향군직원들 대부분이 위관급으로 전역한 지 오래된 이들이 근무를 했는데 내 생각에는 소위 백으로 들어온 거 같았지만 우리 주차요원이나 경비원들을 부하 부리듯 했다. 나도 삼 년 만기제대를 한 육군예비역 병장인데 그들의 갑질이 눈에 찰리가 없어 결국 봄, 여름 근무를 하고 가을에 니들이 다 해 먹어라 하고 나오게 된다. 그리고 보름여가 지나가는데 밖에를 나가다 집에 있으니 견딜 수가 없어 결국은 다시 정보지를 보고 경비원 모집을 하는 지금의 At센터인 농협무역회관이 던가에 면접을 보러 갔다. 경비대장이 아마도 키를 보고는 안 되겠던지 다른 좋은데 소개를 해준다고 지금 대통령이 살던 대림 아크로비스타는 무너진 삼풍백화점자리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고 그 맞은편의 7층짜리 건물을 소개를 해주어서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 경비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그 당시에도 시설관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미리 겁을 먹고 경비근무를 시작해 8년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2010 역시 경비면접을 보러 갔는데 기계실 직원 급여가 너무 적어 경비로 뽑고는 면접을 볼 때 기계실직원이 비었는데 어떠냐 그래 속으로 이게 웬 떡이냐 하고는 경비원 마지막 월급보다 10만 원이 적은 급여를 받고 기계실 직원을 시작해 올해 11년이 되었다. 아마도 그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도 경비원을 하고 있었을 정도로 매사에 추진력이 없다 내가. 그때 내 나이가 오십도 안된 마흔아홉이었다. 그렇게 24시간 격일로 경비원을 시작했는데 교대를 하는 분이 칠십쯤 된 양반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상호신용금고 건물이었을 때 낮에는 은행이 문을 열어 밤에만 근무를 하는 사람을 쓰느라 그렇게 경비원에서도 퇴직을 한 양반을 쓰다 지도자 육성장학재단이라는 곳에서 빌딩을 매입해 입주를 해서 주야간 경비를 근무시키게 되어 계속근무를 하게 된 경우인데 못된 습관으로 자기 멋대로 내게 강요를 해서 내가 듣지 않아 시끄럽게 되고 젊은 관리팀장(관리소장)이 경위를 듣고는 노인네에게 주의를 주니 자기가 하는 생각은 안 하고 팀장이 자기만 미워한다고 했다. 그 팀장은 일 년 근무 후에 내가 그만둘 때까지 꼭 박선생님하고 불러준 사람이라 지금도 생각이 난다.

배가 고파서 오늘 그만이고 내일은 고교졸업 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고교동창을 만나러 간다. 임시 과창회인데 그 친구가 나를 보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기쁜 마음으로 만나러 간다. 나를 보고 싶다는 게 드문 경우라 더 좋고.

 

-오늘 여기까지.

 

-2023. 3. 9. 오늘은 지하주차장 입구 배수로 청소를 했는데 이 또한 여기서 처음이다. "늘근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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