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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어제가 이곳 아파트 근무한 지 두 달이 된 날이다.

보통의 경우 수습기간이라 이름하여 첫 계약을 세 달로 하고 결격사유가 생기거나 인사권자의 눈에 들지 못하면 이 개월이 되는 날 삼 개월 후 계약종료 통보를 한다. 그전에 새 일자리를 찾아보라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해야 하겠지. 그래 그동안 며칠을 그 문제로 생각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 결정이 된 것이 없으니 그냥 기다려 보는 수밖에.

 

- 스물네 번째 이야기.

 

그렇게 그 비싼 월세의 가게를 얻어 역시 물건을 갖추고 하는 장사는 자본금이 없어 생각도 못하고 역곡에서 처럼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 새벽에 아내가 가서 용달에 물건을 싣고 오면 가게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다 물건을 내려 진열을 하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이경시장 골목으로 들어오는 도로변에 과일 노점이 널려 있었고 시장 골목 입구에도 과일가게가 있어 생물에 이력이 난 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우리는 대적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 한 달인가 두 달을 버티다 결국은 접고 나는 지금 생각하면 우울증이 온 상태라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내가 정보지를 보고 생각한 게 패스트푸드였는데 가게도 좁고 이름난 브랜드를 할 여건이 되지를 않으니 정보지에서 이름도 듣지 못한 체인점 광고를 보고 계약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되는데 간판과 유리창에 선팅정도를 해주고 돈을 받고는 개업날 개업시간이 되어도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아 가게 셔터를 내리고 둘이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가 너희들 사무실 엎어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서야 그들과 가게로 돌아와 간신히 문을 열고 닭을 튀기고 피자도 굽고 햄버거를 만들어 시작을 했다. 거기에 돈가스까지. 처음에는 시장 안에 못 보던 품목이라 그럭저럭 장사가 되었는데 큰 길가 로터리에서 금은방을 하던 사람이 시장 안에 들어와 김밥을 사가는 길에 유심히 쳐다보고 다닌다 싶었는데 얼마가 지난 후에 당시에 체인점을 넓히던 BBQ 이름을 달고 장사를 시작을 했다. 그 건물은 주인이 먹는 업종은 임대를 하지 않았는데 금은방은 오래 장사를 해서 예외로 허락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BBQ는 당시에 모두 식용유로 닭을 튀길 때 동물성 기름인 OO을 쓴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점포를 늘이고 있었고 아이들은 고소한 맛에 선택을 하게 되어 원래 어른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니 깨끗하게 기름 제거하고 일반적으로 치킨집에서 식용유 5G/L 한통에 120마리 튀기는걸 그 절반인 60마리를 튀기니 어른들은 담백하고 맛이 깨끗해 좋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까지는 모르고 고소한 브랜드 제품을 좋아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몇 마리 팔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비싼 월세도 감당을 하지 못해 거의 10개월이 지날 무렵 주인에게 이제 월세 부담도 못하겠으니 가게를 빼달라 하고 셔터를 내리고 말았다. 보증금 이천에서 육백이 그냥 날아가고 몸고생 마음고생만 한 꼴이 되었다. 역시 그때도 나는 계속 우울증 상태였고.

그리고 IMF사태가 시작이 되었지만 우리 가게 장사는 내보기에는 그것과는 거의 무관했다. 물론 식용유 5G/L이 2만 원에서 4만 원까지 오르고 모든 재료값이 오르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장사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역곡을 떠날 때는 장사를 다 안다고 생각을 하고 왔지만. 그럼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당시 전세 4천만 원짜리에 살았는데 전셋값이 내려간다는 보도를 보고 일층에 살던 주인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먼저 얼마나 내려 주면 되겠냐 물어 아마도 천만 원인가를 돌려받아 사용을 했을 거다. 그런데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도 다녀왔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 집을 내놓으라고 하고는 할머니와 시집간 우리 또래 딸이 할아버지를 우리가 부추겨 전세금을 내려받았다고 이사 나오는 우리에게 패악을 부렸다. 그리고는 그 뒤 얼마 더 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 이문동을 떠나 이대 앞에 살 때도 4년을 살고 나오는 날 그 집 안주인이 우리 아내와 서강대로 운동도 다니고 했어도 역시 패악을 부리고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 좋던 남편의 등산 중 사고 소식을 들었다. 참 결혼 후에 살면서도 돈이 없다고 받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조울증에서 벗어난 지금은 웃기지들 말아라 우리가 너희들 보다는 더 나은 생활인이다 하고 만다. 

 

그러는 동안 정확한 시기는 기억에 없는데 가끔 부부싸움을 하다 하루는 화가 치밀어 장모님께 전화해서 도저히 같이 못살겠으니 장모님께서 데려다 교육 좀 시켜 보내세요 하는 건방도 떨고. 아마도 우울증 기간이 아니고 躁症상태였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는데 역시 불같은 성격의 우리 장모님이 어떻게 그냥 듣고 마셨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결혼초 처삼촌과 처이모가 우리 집에 다니러 와서 당시에는 동서였던 김서방이 막내라 그런가 버릇이 없다고 내게 얘기를 해서 나도 남의 사위고 저도 그러니 장모님과 처제가 온 김에 이런 얘기 나도 듣기 싫으니 알고 있어라 하고 처제에게 얘기를 했다고 너는 잘하는 줄 아느냐고 일어나 가게 유리문을 부서져라 꽝 닫고 갔던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화는 치밀었어도 당신 딸의 고집을 알고 있어 그랬을 일이다. 어떨 때는 사위 앞에서 오 남매 키우면서 당신에게 말대답한 건 큰 딸 뿐이라고 같이 흉도 보았으니. 지금이야 죄송하지만 그래도 장모님 살아 계실 때는 내가 푸념이라도 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안 계셔 더 아쉽다. 돌아 가신지 꼭 13년이 되었다.

 

- 오늘 여기까지.

 

오늘 27일이 급여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보다. 입금이 되질 않았다. 내일은 주겠지. 

 

- 2023. 2. 27. 이번 달 마지막 근무날에. "늘근 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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