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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이제 봄기운이 사방에 보인다.

아직 쌀쌀하기는 하고 다음 주에 영하 6도로 내려간다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제 아침에 기전과장과의 회의를 하고 오늘 오후에는 관리소장님의 우리 둘 근무자에 대한 주의와 당부가 있었다. 불협화음이 이어 지면 모두 사표를 쓸 각오를 해라. 그리고 기전과장에 대한 업무당부도 있었고. 제일 나이가 위인 내가 제일 민망했지만 합리적인 일처리를 하는 소장님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 스물두 번째 이야기.

 

그렇게 노점장사를 시작하는 동안 우리 아들은 아들대로 힘들게 자라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안정된 자리를 잡지 못한 원인 중의 하나라 미안하기 짝이 없다. 성격이 나를 닮은 데다 엄마가 집에서 살림만 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텐데 돌도 되기 전부터 유모차에 태워 놓고 시장 길바닥에 옷을 펴고 팔았으니 손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유모차 등받이로 올라가 뒤로 쓰러지기를 부지기수였고 지금의 나처럼 내려놓으면 사방으로 뛰어다녀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젖도 모자라 배도 곯았고 우유도 먹지 않았으니 크지도 못하고 그렇게 세 식구가 모두 힘들게 시작을 했는데 스물여덟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그 뒤 집에서 지내다 용돈이 궁해 여동생 직장에서 얼마를 빌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8층 숙녀복상가에 한 칸짜리 가게를 꾸미고 옷도 얼마 없이 커피나 타마시고 책 보고 노동부직업훈련원에서 배운 목공예 솜씨로 나무나 깎고 지내다 실업자에 몇 대 장손인 나를 만나 결혼이라고 해서는 무슨 용기로 시장 길바닥에서 아동복을 팔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마도 아내를 만나지 못했으면 장가도 가지 못하고 늙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엄마는 처갓집에서 반대를 한다고 하니 네가 직장이 없어 그렇지 무엇이 빠지냐고 했던 분이다. 우리 누이들도 그 얘기를 듣고 배꼽을 잡았었지. 

그렇게 시작을 한 수입품장사가 자리를 잡고 물건을 늘리기 시작하고 노점 열세 군데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쇠기둥을 세우고 포장을 치게 되었다. 우선 햇볕과 비를 피해야 해서. 그러다 보니 한집 두 집 포장을 치게 되는데 우리가 자리를 잡은 장소는 아파트 옹벽이 있는 곳이고 또 시장통이라 사람도 다닐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아파트상가의 상인들이었다. 노점이 생기기 전에 이미 상가의 상권이 죽어 있었지만 밖의 노점이 장사가 제법 되니 배도 아프고 1989년 그해 지금 부천역 북부광장에 어마하게 있던 노점단속이 시작되고 우리 조공시장은 큰 길가가 아니라 괜찮은데 상가 상인들이 진정을 하기 시작을 해서 단속이 한 번 나오면 경기도에서 50여 명이 나와 포장을 전부 치우고 물건도 치우고 사진을 찍어야 철수를 했다. 그런 단속을 수없이 당하는데 다른 집들은 생물이라 치우기도 수월했지만 수입품 주방그릇 위주였던 우리는 하나하나 박스에 담아 보관을 해야 했으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보관도 어려운 이중고를 치르고 지냈지. 아침에 내가 나와 물건을 진열하는데 두 시간이 걸리고 저녁에 치우는데 역시 두 시간이 걸리는 생활의 반복이었고 저녁이 되면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한참을 올라가는 집으로 녹초가 되어 들어갔고 나는 배를 곯고 열두 시가 되어 집에 들어갔으니 지금도 식욕이 좋지만 그때도 그래 밥을 사 먹을 수도 없어 한잔으로 허기를 달랬고 그러다 너무 힘들면 나에 대한 울분을 혼자 푸느라 남들이 보기에 정신 나간 행동도 하고 그랬다. 당시 유행하던 유리 커피포트 주전자를 행길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그런 짓도 하고. 서울태생이 거기까지 내려가서 갖은 무시를 당하는 게 그때는 젊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해서 그랬을 테다. 지금 생각하면 못난 짓이었지.

 

- 오늘 여기까지.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 동출입구 전등을 켜야 하는 시간이다. "늘근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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