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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며칠째 몰아 치던 寒派가 오늘 새벽 출근길에  바람이 잦아들어 한결 났더니 이제 오후에는 많이 따뜻해졌다. 웅크리던 몸과 마음이 풀리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제 목요일에 민원이 들어와 방문을 했었고 오늘 다시 예약을 받았던 넓은 평수의 세대에 가서 거실 전구스위치 두 개를 교체하고 한라봉 두 개와 얇은 과자 한 봉지를 받아 가지고 좀 전에 내려왔는데 화장실 원터치 일체를 사다 놓고 시간이 날 때 교체해 달라고 했다.

ㅎ ㅜ.

 

 

- 열여덟 번째 이야기.

 

우리가 둘이 결정을 했던 그 해 오월 결혼은 물 건너가고 처제가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애초에 반대를 할 때부터 우리 아내가 한 말이 만약 처제를 먼저 보내면 자기는 식 올리지 않고 그냥 살겠다고 해서 정말 처제가 날을 잡고 결혼을 하게 되니 나에게 우선 방을 하나 구해라 그러면 자기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나오겠다 해서 생애 최초로 서울을 벗어나 부천시 심곡동, 부천역에서 두어 정거장 거리에 있던 아내의 유일한 친구네 동네에 방을 얻게 되었다. 큰 길가 바로 뒷길에 작은 가게가 있고 거기에 있는 손바닥만 한 방이었다. 직업이 없던 내가 우선 먹고살아야 되니 그런 곳을 얻었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우리 신길동 집도 엄마가 처분을 해서 아들 삼 형제와 엄마 네 몫으로 나눠 내 거처도 없을 때라 내가 우선 사용을 하고 아내는 쇼핑백에 자기 옷과 물건을 나르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처제가 방을 함께 썼으니 금방 알게 되었고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제야 장모님께서 허락을 하게 되었다. 아들도 아니고 딸을 그것도 한 달 반 차이로 순서를 바꾸게 되었으니 직업도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던 나야 처갓집 쪽을 이해는 한다고 했지만 불과 한 달 반 차이로 그렇게 한 것이 서운하고 아내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내 네 살 터울 남동생이 먼저 장가를 갔는데 형이 준비가 안되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또 엄마가 미리 지방에 발령이 났고 색시 감도 있으니 먼저 보내도 되겠느냐 물어서 그렇게 하세요 했지만 한편이 서늘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렇게 노총각 노처녀가 동생들을 먼저 보내고 1987. 7. 3일 그 무덥던 날에 서울 합정동 `규수당 예식장`에서 혼인을 했다. 우리 맏처남과 처제에 이어 결혼식이라도 자기 하고 싶은 곳에서 하자고 해 당시에는 서울에서 겉모양부터 이쁘게 특이했고 `윤 씨 농방`이라는 원목가구점을 여사장이 함께 운영하고 예식장 밖 정원에서 웨딩사진을 촬영해 주었던 원조 예식장이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 예식장 실외의 웨딩촬영이 유행을 했다. 대신 당시에 모두 찍던 비디오 촬영을 안 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한 번쯤 후회를 했고 또 한 가지 맏처남이 직장도 괜찮았지만 주식으로 재미를 볼 때라 제주도 여행을 풀로 준비해 보내 주겠다는 걸 두 자존심 때문에 마다하고 설악산으로 다녀왔는데 그 역시 후회를 하게 되었었다. 지금이야 그 비디오 보는 또래도 없겠지만. 

그리고 하나 더 미안했던 일은 1987 민주화 시위가 한참일 때 우리는 결혼준비를 하러 다니고 명동 일대와 서울 시내에서 넥타이부대까지 시위를 했는데 그때 장가를 못 가면 아주 못 갈 염려로 준비하러 다니면서 속으로는 엄청 미안하고 민망했었다. 지금까지도. 동생뻘 박종철과 이한열(우리 아내 이름이 李漢熱이다, 漢자 돌림에 매울熱)과 그들의 희생에 온몸을 내던진 시위 학생들과 넥타이 부대 젊은 분들에게 미안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우리 아내 이름은 누구도 한번 들으면 기억을 했고 우리 부부 이름을 박제영 이한열 쓰면 모르는 이들은 男女를 바꿔 안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시작하는데 곧이어 아이도 생기고 우리들의 눈물 나는 고생이 시작된다.

 

-오늘 여기까지.

 

 당시 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의 冥福을 빈다.

 

 

- 2023. 1. 28. 오후부터 기온이 올라 여기 전기실 컴 앞에 겉옷도 벗고 일기를 쓴다. "늘근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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