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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오늘은 일요일 근무라 아직 민원도 없고 한가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휴일이 없는 우리는 토, 일요일 공휴일이 비교적 한가하고 쉴 수 있는 날이다.

 

- 열두 번째 이야기.

 

그렇게 선임이 되고 선임들에게 그렇게 당하고 지내다 선임이 되어 무슨 일인가로 후임을 집합시키고 기합을 주려고 하는데 덩치가 무척 크고 비교적 착했던 후임 한 명이 내게 반기를 드는 일이 발생을 했다. 내가 아무리 후임들을 괴롭히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그들이 느낀 게 그게 아니면 나도 악랄한 선임이 되는 것이니 달리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사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물론 약간의 서운함은 있었지만, 그런 일 이후로 조용히 지내다 제대를 하게 되는데 군번 하나 빠른 동기는 후임들에게 일체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아 그 악역을 내가 맡아 나만 나쁜 선임이 되었고 그 후 제대해서야 그 친구 성격이 왜 그리 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 성격은 나하고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는데 내가 늦게 결혼을 한 1987 이듬해 그의 어머니 칠순을 워커힐 호텔에 직원으로 있던 그 형의 주선으로 그 호텔에서 치를 때 우리 아들 돌도 되지 않은걸 아내가 멜빵에 메고(나는 남자가 메는 게 보기 싫어 한 번도 메지는 않고 안고 다녔고) 가서 보고 연락이 끊겼다 2015 원효로 아파트에 근무를 할 때 우리 고교 동창회사무실, 고교 내에 있는 사무실 여직원이 전화를 해 이런 분이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해서 바로 통화를 하고 다음날 근무지로 찾아와 27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몇 번을 더 만나고는 내 생활이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아서였겠지만 연락을 끊었다. 기가 막혀 속에 담아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괘씸한 생각이 들어 결국은 작년에 그가 혼자 산다던 역삼동 오피스텔 같은 데를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 문을 두드렸더니 한참만에 평상복을 입고 나왔다. 그래 자동문을 열고 나와 들어오라고 하는 걸 너 그렇게 살지 마라, 그리고 우리 고교 다녔다고 얘기하고 다니지도 말고 하고는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제대를 하고 신길동 우리 집에를 와서 저녁을 먹고 내 방에서 효창동에서 태어나 자란 얘기를 하며 국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어떤 기회에 설계사무소 소장 눈에 띄어 건축설계를 배우고 도면을 그리다 군면제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H공고를 졸업했다고 하고 입대를 해서 나하고 같은 공병병과를 받고 현역으로 제대를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참 대단하다 고생도 많이 했을 테고 내가 부끄럽다 비록 실업계지만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공고 건축과를 졸업한 나는 그 일도 다른 일도 하지 않고 세월을 죽이다, 더군다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고도 그렇게 한심 한 생활을 하다 입대를 하고 제대를 해서도 자리도 못 잡고 있는데 취직도 바로 했으니 내가 부끄럽다고 얘기를 했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가 다른 데로 직장을 옮겨야 하는데 졸업증명서를 뗄 수가 없으니 내 졸업증명서를 좀 떼어 주면 안 되겠냐 부탁을 해 잘못하면 범죄가 될 수도 있지만 직장을 갖고 싶어 하는 동기고 사정을 알아 두말 않고 떼어 줬다. 그리고 그 얼마 후부터 연락이 안 되다 내가 결혼할 때 어떻게 알리게 되었고 당일 날 사진을 찍어 준다고 당시에는 아주 귀한 가방에 담아 메고 다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는 지난번 다시 만났을 때 까지도 받지를 못했다. 오늘 이 얘기를 올리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무리 진심으로 대해도 결국은 상대의 人性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그러고는 페북에서 만난 후임병, 그는 꽤 알려진 詩人이 되었는데 그 친구에게 찾아가 내 얘기를 해 나를 나쁜 사람으로 대하는 어처구니도 당했고. 그 후임도 자대에 와서 말없이 부대를 이탈했다 다음 날 계급장과 명찰을 다 뗀 채로 복귀를 했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끝이 날 정도로 든든한 부모의 장남이었고 바로 아래 동생과 같이 공병대대로 와서는 형은 대대본부 동생은 작업중대 작업병으로 함께 근무를 했던 산정호수에서 의원을 하던 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군복무 중 결혼을 했던 매주 면회를 오던 부인과 오래전에 이혼을 했다고 자신이 얘기를 했다. 본인은 히말라야를 자주 오가고 지금 강원도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詩集도 몇 권 냈다는 것은 페북프로필을 보고 알았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일도 부럽지 않다. 그런 친구를 찾아가 어떻게 찾아갔는지 궁금한데. 그는 그때까지 SNS도 하지 않았으니 다른 방법으로 찾았겠지. 그리고 사실 모두를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테고. 논산훈련소에서 세 명씩 조를 짜 총기분해결합 시험을 보는데 혼자 늦어 나중에 조교가 늦은 사람 누구냐 물어도 끝까지 앞으로 나가지 않아 셋이 모두 기합을 받게 했던 장본인이니.

 

다시 말하지만 그 동기를 꼭 집는 것보다 내가 살아 오면서 그렇게 바보짓을 하고 살았다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이다.

오늘 여기까지. -

 

여기 근무지는 센서등이라고 움직임이 포착되면 점등이 되고 움직임이 없어지면 소등이 되는 등이 많은데 이 등이 자주 꺼져 이 추운 계절에 바꿔 다는 일이 많다. 엊그제에도 저녁 먹는 시간에 세 개를 갈았고 오늘도 한 개를 갈고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 저녁도 먹었으니 그만 쉬도록 하자.

 

- 2023. 1. 8. 제일 추울 기간인데 외려 기온이 올라갔다. "늘근 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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