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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作日誌

"그 사내, 뒤를 돌아 보다"

 

 

 

1979년 오늘,

창군이래 한 번도 없었던 降命사태가 발생한 날이다.

지금은 사망을 했지만 몇 해 전까지도 "나는 잘못한 게 없어" 하고 배를 째라던 전두환 일당이 군의 지휘체계를 무너뜨린 후  수도 서울을 장악하고 전국으로 계엄을 선포 군권을 장악을 한 날이다. 이름하여 `12 12 사태` 그 뒤 결국은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교육이나 받은 군인들이 정권을 잡느라 광주항쟁(처음에는 광주사태로 부르다 몇 년 후에)을 일으키고 그 바로 전 7.24일부로 제대를 했던 나는 다음 해 예비군 교육을 가서 당시 상황을 듣게 되었다. 그 살벌하던 시절이 한참을 계속되었지.

오늘은 출근을 해서 이사검침 한세대를 마치고 기계실 내의 전선이 바닥 배수로에 깔려 누전이 되어 전기반장과 영선 반장이 전기선을  다시 깔고 있어 점심에는 칼국수를 끓이려고 하는데 영선 반장은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해 전기반장 하고 둘이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한번 끓여 보자. 양념과 채소는 없지만 먹을만하게야 못 끓이겠는가. 보고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 세번째 이야기.

 

그렇게 사학년에 살림을 합한 엄마 덕분에 맏누이는 살림을 벗어나고 우리도 엄마가 챙겨 주는 끼니를 먹고살게 되었다. 내가 사 학년 열 살이었고 막내 누이가 열네 살, 내 아래 동생이 여섯 살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다음 해 태어난 막냇동생과 나는 열 살, 바로 아랫 동생과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데 엄마가 일곱 살짜리 일 학년 동생과 새로 태어난 막내를 챙기기가 힘드셨겠구나 하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던 바로 그날부터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도 평생을 고생하시다 가셨지만 우리 식구는 모두 불쌍한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 시절의 재미있는 기억도 있다. 우리 남매들중 위로 누이들은 그저 보통의 얼굴들이고 외려 우리 남자 형제들이 곱상하고 나 같은 경우는 사내가 이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래 동네 동갑내기 사내아이들과도 어울려 놀았지만 동갑내기 여자아이들과도 잘 놀았다. 그래서 얼굴에 할퀸 생채기도 늘 달고 다녔고. 그리고 한두 살 더 먹은 여자 선배들도 날 귀여워했지만 친누이가 많아 누이 소리는 잘 안 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작아 사내아이들과 시비가 되면 힘으로 나를 이기려 했고 나는 그게 싫어 말로 대들어 나를 건드리지를 못했고 선배들이 나를 때리기라도 하면 집안 형들에게 일러 해결을 했고. 그렇게 자라 육 학년이 되어 중학교 진학을 할 때가 되었는데 1965년 그 무렵에도 우리나라에 과외 열풍이 불어 우리 동네에서 세를 살던 아이들도 거의 모두 과외공부를 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엄마도 아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당시 국민학교 한 반이 80명이 넘었는데 내 성적이 공부는 `일`도 안 했어도 10등 아래 상위여서 동네에서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국어와 산수는 정말 잘했다. 사회나 자연은 외워야 했지만 국어 산수는 기본만 알아도 되었으니. 육 학년 담임이었던 김광열 선생님이 너도 과외를 하면 성적이 더 좋아질 텐데 했을 때 우리는 과외할 형편이 안됩니다 하고 대답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어쩌면 그만큼 자신이 있었겠지만. 그렇게 나의 국교시절이 끝이 나고 중학생이 되었다.-

 

오늘 여기 근무지가 참 어수선하다.

밸브교체하느라 외부 업자가 작업을 하는데 제대로 되지도 않고 같이 근무하던 전기반장이 오늘을 끝으로 퇴사를 한다고 해서 누가 올까 걱정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 2022. 12. 12. 속에 딴마음을 품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12.12에. "늘근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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