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야 하나 걱정을 하는 내게 마눌이 한 얘기는 자기가 수술하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을 알아 볼테니 너무 걱정을 하지 말란 거였습니다. 다음 날 부터 여기저기 알아
보던 중 바로 앞집에 살고 있는 우리 또래 아주머니가 저와 비슷한 경우로 같은 병을
앓았는데 여러 군데 병원에를 다녔어도 고치지를 못하던 중, 동네에서 합기도장을 운영
하는 분을 만나 그 분에게 치료를 받고 낳았다는 얘기를 듣고 그 분에게 바로 연락을
해서 다음 날 아침에 우리 집에를 와서 만나 보니 제 또래의 성실해 보이는 분이었
습니다. 상황설명을 하고 당신이 치료할 자신이 있으면 맡길 것이고 조금이라도 확신이
서질 않으면 병원에서 수술을 받겠으니 솔직한 답을 주세요, 했습니다. 비록 의사면허는
없는 일종의 돌팔이지만 제가 얘기를 듣고 보니 나름 혼자서 책도 많이 봐가며 침술과
지압에 대한 공부를 한 사람이어서 믿음도 보였고 고칠 수는 있는데 통증을 참고 치료
기간에 얽매이지 않으면 치료를 해서 고칠 수가 있다는 거 였습니다. 해서 그럼 당신을
믿고 받아 보겠으니 고쳐만 주세요, 하고는 바로 다음 날 부터 아침에 우리 집에를 와서
한 시간중 삼십 분은 침을 놓고 나머지 삼십분은 지압을 하는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동안 마눌의 고행이 시작되었지요. 일반적인 가게는 셧터만 올리고 열면 되지만 우린
포장을 풀고 접어서 매달아야 하고 상품을 꺼내서 진열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제가
할 때도 몇 시간이 걸리던 건데 해보지 않던 일이니 힘이 드는데다 자기가 담당하던
옷가게는 물건을 하러 동대문시장에도 다녀야 하고 다녀 와서는 가게를 열고 진열도 해
야 하고 하는데, 옷은 그 품목만으로도 몸이 약한 우리 마눌이 어려운 장사였는데 수입품
까지 팔아야 하니 새 배쯤 힘이 들었지요. 그런데다 그 해 아들이 학교를 가서 그 뒤치
닥거리도 만ㅁ치가 않았구요. 그런데다 지금도 <삼성물산>에서 정년이 지나고 연장
근무를 하고 있는 제 바로 밑에 동생이 창원의 삼성중공업에서 과장으로 근무중에 그 해에
시작된 사원들의 미국연수가 다음해(1995년도)에 과장급으로 확대가 되어 그 대상에
뽑혀, 한 여름에 서울본사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올라 와서 두 달을
본사교육장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 집에를 있게 되었는데 당시에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새벽 출근을 시키던 때라 새벽밥을 해 주어야 했지
요. 누이들 집도 있었지만 그래도 형네집이 편했던지 우리 집에서 주중을 보내고 주말에는
창원집에를 내려 가는 생활을 해서 지금 생각하면 우리 마눌이 그 4개월여(치료기간)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대단한 생각이 듭니다.
- 중 략 -
- 2015. 12. 2 5. "연희 나그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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