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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ㅇ장똘뱅이의 추억(일곱번 째)

 





 

 

그렇게 장사를 이어 가던중에 1994년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활을 하던중에

그제야 가게에서 가까운곳에 두칸짜리 방을 얻어 이사를 하고 아들녀석은 국민학교(당시에는 바뀌기 전임

)에 입학을 하였지요.

그해 초여름부터 덥다 했더니 지나면서는 얼마나 더웠던지 기상관측 이래로 순위안에 들 정도로 기온이 올라

갔고 여름이 중반인 7월말에 한여름까지 팔고도 재고가 남는 여름상품이 남대문 도매시장에도 품절이 될 정

여서 다른해에는 8월말쯤 피서철이 끝나는 때에 쉬던 것을 여름물건이 없어서 일찍 피서를 가려고 8월초

기차표를 예매해 놓고 기다리던중 이틀을 남겨 놓고, 아침에 가게에서 일어 나려니 몸이 일으커 지지를

않는 거였습니다. 혼자서 몇번을 추스려도 일어날 수가 없어 이십여분을 혼자 애를 쓴 뒤에야 간신히 일어 났

지요.

왜 가게에서 일어 났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그 지난 해 겨울에 한참 추운 날씨가 이어 지는데 아침에 가게

에를 나가서 포장을 열고 들어 가면 누군가 들어 와서 뒤지고 간 흔적과 잠글 수 있는 진열장에 넣지 못하고

천으로 덮어 놓기만 하는 물건이 손을 탔는데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을 반복 되니 한번은 잡아야 해결이 되

길래 그 추울 때 새벽에 나가 가게주위에서 몇시간을 지키고 있기를 두어번 만에 가게에를 들어 가는 검

그림자들을 발견을 하고 나오기를 기다려서 따라 가다 큰길에서 보니 중학생정도의 아이들 두명이었습니

다. 일단 한 명을 붙잡고서 파출소에 연락을 했지요.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겠고 두명을 혼자서 제어 할 수도

없구 해서요. 파출소에서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만난 한 쪽 부모는 얼굴을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동넷분

이었으니까요. 한 학생은 엄마도 없이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아이였구요. 헌데 일단 신고가 된 사인이라

고 해서 조사도 받고 검찰로 인계를 해야 한다고 하길래 선처를 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해 주고 결말을

냈는데 참 인간사가 못된 것이 손해배상도 해주지 않더라구요.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요. 적어도

가지고 간 물건 값은 주어야 하는데도 것도 입을 씻고 말더라구요. ㅎ ㅜ .

그런일이 있고 나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봄이 되고 물건이 많아지니 진열장에 넣지 못하는

물건이 많아 져서 불안하기도 하고 우리 때문에 범법자가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아 방법을 생각을 해봐도

뾰족한게 없어 제가 가게에서 밤에 자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밤늦게 장사를 끝내고 안에서 포장

을 닫아 놓고 겨울장사를 하느라 그 당시 노점에서 장사를 하던 분들은 추위를 이기기위해 철판으로 만들어

서 그 안에 물을 담을 수 있게 등받이까지 있는 의자를 사용했지요. 의자밑에 가스불판을 놓고 작은 불꽃을

피워 놓으면 의자안에 넣은 물이 데워져서 온돌역할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의자인데 여름에는 불을 넣지

않아서 시원한 느낌이 있는 그런 물건인데 그 의자위에 보통 비닐 장판 한장을 붙여 놓고 사용을 합니다.

그러니 그 위에 아무 것도 깔지를 않고(시원해서) 몇달을 잤더니 그 찬기운이 발병의 원인이 되었던겁니다.

간신히 일어나 집에를 내려 가서 마눌에게 설명을 하고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정형외과에를 가서 진

찰을 받은 결과 제 또래 원장이 하는 말씀이 엑스레이상에 목디스크 같으니 MRI 촬영을 해보라는 것이었

습니다. 헌데 그 당시에는 장비가 귀해서 종합병원에 가야 찍을 수가 있구 그도 접수를 하고 기다려야 찍을

수가 있었고 값도 지금도 비싸지만 그 때는 더 비싸서 쉽게 찍기도 어려웠고 또 내가 목디스크가 걸릴 이유

도 없어서 믿어 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그 낭 오후 부터 고개는 숙여져서 위로 올릴 수가 없어지기

시작을 했지만 선뜻 사진을 찍는 거 보다는 처갓집에서 다니던 한의원에 가서 쓸데없는 진료를 받아 지어

온 한약에 가뜩이나 밥은 잘먹는 사람에게 뭔 식욕을 땡기는 약을 넣어 줘서 밥 숫깔을 놓자 마자 배가

고파서 다시 먹기를 반복하니 배만 뽈록하게 나오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한달 여를 낭비하고서야 부천 성

가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MRI 촬영을 예약해서 일주일쯤뒤에 연락이 와서 사진을 찍고 며칠 후에 혼자

서 병원에를 갔더니 필름을 보여 주며 이정도상태면 통증이 심할텐데 어떻게 견뎠느냐 하면서 당장 입원실

이 있으면 입원을 해서 수술울 하자고 해서 필름을 보니 중간 뼈 하나가 완전히 45도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래 저 혼자 결정을 할 수가 없으니 집에 가서 상의를 한 후에 오겠습니다, 하고는 집으로 오는데 앞이 캄

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일학년에 들어 가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을 했고, 벌어놓은 것도 없는데 이걸 어

째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며 집에를 왔지요. 나중에 우리 마눌이 하던 말이 집에 들어 오는 내 얼굴이 하

얗게 질려 있더랍니다.

ㅎ ㅜ .

- 중  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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