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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늘 혼자.

 

 

 

오늘은 혼자 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했다.

우리 형제 사녀삼남중 제일 맏이인 큰누이는 1992 음 팔월초하루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일찍 돌아 갔다. 1942생이니 겨우 쉬흔하나에 사녀일남중 큰딸 하나 그 전해에 시집을 보내고 막내인 아들은 중학생이었다. 큰누이는내가 일곱 살 1960년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해 가을에 삼녀이남을 두고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 가시는 바람에 당시 나하고 띠동갑 열아홉 살 큰누이가 살림을 하게 되었고 내 아래 남동생 1958은 겨우 세 살이었다. 본인도 일찍 떠나고. 아버지는 역시 말띠 겨우 마흔셋이었고. 그렇게 오 남매를 낳아준 엄마를 보내고 맏누이가 살림을 한지 삼 년 후에 지금 백 살이 되셔서 병원에 계신 우리 엄마가 고3짜리 딸하나 키우다 아들이 부러워서 오 남매와 할머니까지 계신 우리 집으로 고생을 하려고 작정을 하시고 들어와 막내 동생을 낳으셨으니 목적달성은 하셨지만 합해 칠 남매를 키우고 시집장가를 보내셨으니 그 고생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뒤 젊어 삼 남매 두고 집을 나가 우리 아버지를 여덟 살부터 고생시킨 할아버지가 칠십에, 내가 고교 2학년이던 1970 하월곡동 아버지가 다니시던 공장 사택으로 들어 오셔 일 년여 지내시다 풍을 맞아 일 년쯤 대소변 받아내시고 다시 영등포 신길동 고향으로 이사와 살다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시고 얼마 후 역시 풍을 맞으셔서 만 4년을 역시 대소변 받아 내시고 그렇게 고생을 하셨다. 그 후 막내가 둘째 누이가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 미국에 보내 달라고 해서 엄마가 미리 1986쯤 들어가셔서 2004까지 계시다 시민권까지 따놓고 나오셔서 막내하고 사시다 2015 가을 시월에 교회계단에서 넘어지셔서 다치지시는 않았는데 검사받으러 병원에 가셔서 결국 나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반환자로 계신다. 그리고 당신이 낳은 우리 막내 동생 올해 환갑인데 장가도 안 가고 10년을 병원에서 엄마간병을 하고 있어 나와 우리 형제들은 물론 친척이나 지인들 모두 안쓰러워한다. 둘째 누이는 1978에 아들 형제 데리고 미국이민을 갔고 셋째와 넷째 누이는 서울에 살고 있다. 큰 매형과 셋째 매형도 돌아가시고 막내 매형 역시 2015에 풍을 맞았지만 지금도 열심히 걷고 한잔도 하고.

내가 장남이라 1987 늦게 장가를 가서 기제사 여섯번과 명절제사 두 번을 지내다 2010 창천동에서 홍대 서교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제사 그만 지내자고 제기를 버리고 가자고 해서 동생들과 상의도 못하고 제사를 폐하고 말았다. 결혼할 때 내가 당신은 교회를 다녀라 대신 나는 내대까지는 제사를 모시겠다 한 약속이 그렇게 깨지고 말았다. 생활도 그렇고 그만큼 제사 준비를 해줘 더 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내 평생 짐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이 장손이지만 아직 미혼이고 동생네 조카들은 시집장가도 가고 아비를 닮아 착실해서 다행이다. 생활이 달라 아버지 성묘도 식구들끼리 다니고 명절당일 엄마 계신 병원에서 모이지만 엄마는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지난 3월에 귀국한 둘째 누이와 매형도 몰라 보셨다고 한다.

장남노릇을 못해 집안 건사도 제대로 못하는 칠십하나 맏아들이 딱하다.

또 이렇게 명절을 보낸다.

일단 옥탑방으로 가서 침을 맞고.

 

- 2024. 9. 10 삼성동 근무지에서 퇴근을 한다. "연희 나그네" -

 

D + 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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