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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ㅇ 우리 맏누이.

 

 

 

내가 태어난 우리 집에는 말띠인 분이 나를 포함해 모두 넷이었다.

제일 윗분이 나하고 꼭 60년 차이 할머니였고 그 아래 아들인 우리 아버지, 다시 그 딸인 내 맏누이, 그리고 장손에 장남

인 나, 그렇게 넷중 이제 나혼자만 남았다. 할머니께서는 젊은 나이에 삼남매를 두고 할아버지께서 집을 떠나는 바람에

어린 삼남매와 고생을 하셨지만 그래도 맏아들인 아버지가 성실하셔서 萬數를 누리시고 86세에 돌아 가셨고 평생 어려

서 부터 고생을 하신 아버지는 환갑되던해 풍을 맞으셔서 예순다섯 되시던 해 양,정월 초하루에 돌아 가시고 맏누이는

쉬흔하나에 가게에서 쓰러져 보름여 중환자실에 머물다 유언 한마디 못남기고 오남매를 두고 떠났고, 그게 벌써 아버지

40년과 맏누이 30년이 지났다.

 

오늘 아침 퇴근 해 정독도서관에 오는길에 그 맏누이와 동갑인 집안 누이의 전화를 받고 옛 기억이 떠올라 나의 가족사

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우리 동네가 서울이었어도 여느 시골처럼 초기집에 논과 밭도 일부가 있었고 전화를

한 누이네도 역시 부모님이 일찍 돌아 가셔서 할머니와 남매들이 같이 지냈고 우리도 오남매를 낳고 병으로 돌아간 엄마

때문에 열아홉 맏누이가 삼년여 살림을 맡아 했었다. 지금같으면 상상이 않될 경우지만 그 시절의 맏딸들은 그렇게 살았

고 그렇게 어려운 처녀시절을 보냈다. 출가한 딸이었어도 집안 대소사를 매형과 함께 챙겼는데 누이가 일찍 떠나고 아래

누이들이 그일을 대신하지 못해 어렵게 늦장가를 갔던 내가 빈주머니에 어깨만 무거워 힘이 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 전화를 한 누이나 또 다른 또래 누이들은 그래도 지금껏 살아 남아 집안 동생에게 전화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

은가. 어려운 집에 맏딸로 태어나 시집가기 전부터 살림도 했고 시집가서도 매형과 같이 장사를 하느라 고생만 하다 돌

아간 누이 생각, 더 고생을 하다 돌아 가신 아버지 생각, 병원에 입원해 7년을 넘긴 엄마, 모두 나를 슬프게 하는 아침이

다.

 

아버지, 그리고 맏누이, 이제 저도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지만 뒤따라 가서 만나면 무릎꿇고 잘못을 빌어야지요. 기다려

주세요.

아직도 추운 아침에.

 

- 2022. 2. 24. 쩅하고 맑은 정월 스무나흘날.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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