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월 초하루,
강남구 삼성동으로 첫 출근을 했다. 삼월에 세 번 사월은 버티고 오월에 한 번에 이어 여기까지 왔다. 남들이나 지인들에게 그리고 우리 마나님께 민망과 `쪽`이 팔리지만 돌다 보니 일상이 되었고 힘에 부치도록 힘도 든다. 1970년 내가 고교 2학년에 하월곡동 우리 집에서 아들인 우리 아버지와 며느리 앞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피를 닮았는지 늦게 만든 가정은 지키고 살지만 일자리 탐색을 이어 가고 있으니 애꿎은 할아버지까지 팔게 되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할아버지 젊으셔서 꽃 같았을 할머니와 나이 어린 삼 남매를 두고 어떤 이유가 되었든 자신은 살겠다고 당신 부모와 처자식을 고향 신길동에 두고 집을 나가 둘째이자 맏아들인 우리 아버지가 여덟 살 때부터 조부모와 어머니 누이와 남동생을 벌어 먹이는 고생을 하게 만들었고 아마도 내가 국민학생일 때에 신길동에 한번 오셨었고 다시 나가 내가 고교생일 때 하월곡동 우리 집으로 들어오셔서 일 년쯤 지내시다 풍을 맞아 일 년쯤 우리 엄마 고생을 시키시고 돌아가셨는데 술 담배도 안 하시고 무골 호인이셨다. 젊어 집을 나간 이유가 내 생각으로 나의 증조부가 재산하나 없는 분이 한 성질 하셔서 집안 잔치나 초상에 상이 먼저 차려지지 않으면 상을 마당으로 내던지고 하셨다니 아들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싶고 그 착한 양반이 견디다 못해 나간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아들과 며느리 덕에 충청도 산골에서 노년을 보내시다 집안 어른들께서 아버지께 모셔 오라셔서 두 분이 내려가 모셔다 한집에 계시다 돌아가셨다. 그랬으니 여기저기를 얼마나 떠도셨을까. 그 피를 조금은 받았겠지. 그리고 증조부의 성질까지도. 내가 그렇게 골라 닮았듯 내 아들도 그런 거 같아 속이 상한다. 주어진 대로 살아갈밖에.
그렇지만 못된 건 조상 탓은 아니다. 모두 내 탓이지.
훤하게 넓던 옛 2호선 삼성역 무역센타앞이 공사 중이라 답답한데 공사내용을 보니 지하공간조성사업이란다. 지상도 모자라서, 대한민국의 최고가치가 강남이라는데 나는 전혀 아니라 늘 부족하게 사는지 몰라도 부럽지도 않고 나는 나대로 살다 갈 것이다.
- 2024. 6. 1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연희 나그네" -
D + 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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