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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

어제 참 긴 하루를 보냈다.

아침 퇴근 후에 전근무지에 가서 좋지 않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다시 들어가 오전에 두부를 안주로 동료와 일잔을 하고 벌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나와 현근무지 앞의 초밥집에서 모둠초밥을 포장해 가지고 다시 4호선을 타고는 이촌역에서 갈아 타야 하는데 잠깐 졸다 깨니 이촌역을 지나고 있어 그래 그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가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자.

 

일기를 쓰고 있는데 동료가 뭐라고 얘기를 해 중단하고, 며칠 전에 달았던 센서등 눈알의 방향이 틀렸다고 여기 룰에 따르라해 다시 달고 점심을 먹고 잠깐 한 수후 이어서 쓰고 있다.

 

간신히 환승을 하고 신촌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 일층 현관앞에서 마눌에게 주니 잠깐 기다리라고 초밥을 덜어 주겠다 해 그냥 간다고 해도 기다리라고 하고 덜어 가지고 내려와서는 웬일로 오후에 무얼 하느냐 별일 없다고 그럼 헤이리에 가자 알았다 하고 내려와 사러가쇼핑 물품보관함에 그제 맡겨 놓은 반찬 찾아 숙소에 두고 바로 사러가에 다시 나가 기다리다 내려온 마눌하고 헤이리로 출발 나는 광역버스에서 곯아 떨어지다 도착을 했다. 내려서 `동화경모공원`안으로 들어서 어디부터 갈 거야 당연히 장모님부터 찾아뵈어야지 하고 납골당으로 향해 올라갔다.

오빠 묘소와 어디를 먼저 가겠느냐는 얘기인데 2010.2월에 장모님 돌아가실 때 큰처남이 내게 장례를 어떻게 모셨으면 좋겠나 물어 나는 화장주의다. 사위니 참고로 물었겠지만 그렇게 화장을 모셔 납골당에 모셨다. 이북 5 도민들이 조성한 공원인데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적성에 모셨고 장모님을 납골당에 모신후 막상 화장을 모신게 좋지 않았는지 자신은 묘지에 눕게 되었다. 장모님이 돌아 가신 후 제일 아쉬웠던 사람은 나였다. 좋게 허락을 받지 못한 사위였어도 돌아갈 때까지 겉으로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고 한잔하고 하는 넋두리를 다 받아 주셨다. 그리고 오남매 자식들 집에서 주무신 게 우리 집이 유일한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며느리보다는 사위가 편했는지 나야 감사할 따름이었지. 내가 맏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혼자 남은 장모님과 같이 살았을 것이다. 서로 조금 불편했더라도. 장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처남이 먼저 발병을 해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처남 앞에 돌아가셨고 장모님 가신 4년 후 같은 2월에 가게 되었다. 연초에 내하고 같이 환갑 기념을 하자고 하더니. 

납골당에서 한참을 내려와 처남 묘소에 들러 식구들이 다녀간 흔적을 보고 처남이 간 후 연락을 끊은 처남댁과 처조카 남매가 궁금한데 잘 지내고들 있겠지. 그걸 보면 우리 늙은 아내를 잘 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묘지를 나와 그전 헤이리에 가면 들르던 커피공장 103 삼층에 올라가 차 한잔에 지는 해 구경을 하고 서둘러 서울행 버스에 올라 또 잠에 빠져들어 내릴 때 카드를 대지 않아 환승도 못하고 다시 동네 사러가에 들러 반찬 찾아 귀 숙소 했다. 그리고 피곤에 절어 일찍 잠이 들었고.

 

오늘 새벽 세시에 깨어 성경필독 마치고 출근을 해서 오전을 그렇게 보내니 며칠 좀 잘 지낸다 싶었던 일이 역시나다. 보통의 일자리면 족한데 어째 이렇게 서로 힘이 들게 하는지, 아마도 자신들은 그렇게가 편해 그렇겠지만.

일년 동안 네 사람이 바뀌었는데 그들이 잘못이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 2023. 1. 12. 네시에 다녀 가기를 원하는 민원대기를 하며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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