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이제 제 자리로.




1954生이 1987.7.3에서야 장가를 가서 1987.11.30 새벽에 낳은 아들이 올해 서른아홉이 되었다. 요즘 만나이로 하면 아직 스물일곱이다.처음 만나 얼마 후에 둘이 결혼하기로 결정을 하고 바로 애를 가져서 그렇게 되었으니 실수로 생겨 억지로 결혼을 한게 아니었지만 조금 부끄럽기는 하다. 아내는 오늘 일기를 보면 쌍심지를 돋을테지. 당시에 돌아 가신 장모님께서는 뒤늦게 딸친구를 통해서 아이가진걸 알고 나신후에 믿고 있던 큰딸이라 실망을 하셨겠지만 오남매를 낳아 키운분이 그해 9월까지도 아이가진걸 모르시고 봉천동 친정에 다니러간 딸에게 옥상에 올라가는 심부름을 시켜 결국은 딸친구에게 부탁해 장모님께 얘기를 하고서야 아시게 되었다. 그렇게 친구들보다 늦게 겨우 하나 낳아 기른 아들과 父子사이가 벌어져 말도 나누지 않은지 오년이 되었다. 모두들 애비가 잘못이라고 하지만 나도 할말이야 없겠는가. 중학생때 못된 짓을 당했으니 본인 속이 어땠겠는가, 나중에 성인이 되고서 엄마에게 얘기를 해 우리 가슴이 무너졌지만 이미 돌아 갈 수 있는 시기를 놓쳤으니 부모와 자식가슴에 커다란 멍이 되고 말았다. 그뒤 보통 아이들도 겪는 무서운 시기가 지나고 성인이 되어 군대를 가야하는데 겁이 나서 그랬는지 싸이버대 등록을 하고 입대를 미루다 스물여섯이 된 2012에 소문난 3사단 백골부대 신병교육대로 입대를 해서 훈련을 받고 크지도 않은 체구로 보병 소총수에 분대화기까지 담당하는 보직을 받았다. 정상에서 벗어난 길을 밟아 애비생각은 군복무라도 정상적으로 꼭 마쳐야 한다였으니 제대 하는 날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고 다행히 입대하는 날 애비를 안아주고 들어가 내내 편지와 전화를 주고 받았고 전화로 아버지 존경스러워요 까지 하더니 무슨 이유였는지 제대 얼마전부터 다시 돌아 서고 말아 그렇게 지금까지 10여년이 흘렀고 오년전 집도 좁고 여러가지 이유로 내가 혼자 나와 두집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애비지내는걸 궁금해라도 한다니 이제 더 늦기 전에 말이라도 섞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오래 세식구가 힘겹게 살았다.
이제 끝을 내고 제대로 살아 봐야지. 이 좋은 계절에.
-2025.4.9 꽃이 너무 흐드러져 늙은이 눈물이 난다."연희나그네"-

D + 4,520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덕날씨에 두번 속다.  (0) 2025.04.13
기대를 말아야지.  (0) 2025.04.10
이제 좀 바꿔보자.  (0) 2025.04.07
나는 오늘 좋은 날.  (0) 2025.04.06
부끄러운 날  (6)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