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5)
그해 여름에 동창녀석의 친구 소개로 김포의 해병 2여단(지금은 2사단), 김포일대를 지키는
부대의 내무반, 탄약고, 등등과 김포가도를 넓히고 바로 잡는 공사를 맡은 경상도 소재의 작은
건설회사의 사무실에 취업을 해서 나기보니 말이 현장사무소지 해병 중령으로 전역한 군대물에
흠뻑 젖은 꺽다리 소장과 경리 여직원도 없이 제가 하는 일은 급사겸 심부름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큰 현장에를 가면 정식 기사밑에 기사보라 불리는 자리가 있지만 그곳은 아예 기사도 없이 소장이
주물딱 해결하고 저는 기사라 부르기는 했지만 열아홉살짜리 사환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각분야 `오야지` 책임자들에게 도면대로 하라고 지시를 하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들이
속으로 얼마나 우습고 건방져 보였을지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한여름에 해병 2여단 근무중대가 주둔했던 양곡과 마송의 중간 도로변에 있던 탄약고 정문 안쪽에
`반네루`(합판으로 만든 콘크리트 타설용 형틀) 로 지은 현장사무실중 한편에 조그맣게 만든 사무소와
창고 등등과 타지에서 온 공사인력들의 숙소까지 있어 밥은 `함바`(공사장의 삭당)에서 사먹고 잠은
그 숙소에서 잤는데 그게 싫은 사람들은 시골동네의 방을 월세로 얻어 생활했지요. 그 당시 1972년
에는 선풍기도 귀하고 냉방은 있지도 않던 시절이라 더위와의 싸움도 한몫이었구요.
시멘트가 야간에 들어 오면 그것 하차도 해야 했고 55/G 드럼통으로 빼돌리는 군용 휘발유를 꺼내느라
호스를 넣고 입으로 빨아 내서 5/G통에 받느라 여린피부 팔뚝에 기름독이 오르고 현장에서 빠르게 걷다
나무에 박힌 대못을 밟아 발바닥 찔린 구멍에 성냥개비 서너개의 유황부분을 대고 불을 부쳐서 소독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심지어 비가 내려 쉬는 날은 사무소 한켠에 누운 소장의 다리도 주물렀구요.
현장에 나오는 보안대 상사의 거드름도 받아 내야 했구요. 군사지역이고 부대를 출입해서 인원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그가 보관했는데 그게 없어졌다고 닥달을 하더니 나중에 보니 증보관함의 뒤에 떨어져
있더라구요.
공사인부들과의 얘기는 다음편에 올리지요.
- 중 략 -
-2017.12.17. 굿모닝 시티로 복귀한날에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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