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이
큰이모는 딸만 하나를 두셨는데 아주 옛날 6.25가 나기 전에는 우리 동네(서울 신길동)
에서도 사셨다는 얘기를 돌아 가신 당고모께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전쟁이 터지고 나서
외갓집의 집안들이 모여 살았던 벌터(경기도 화성군 태장면, 지금의 영통부근)로 피난을
가신거 같은데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를 못해서 잘 모르고 제가 기억이 나기 시작한 국교시절에는
큰이모, 둘째 이모네가 외갓집과 함께 모여 살았습니다. 우리, 그러니까 막내동생인 우리만
서울에 떨어져 살다 국교 일학년 일곱살에 둘째이모에 이어서 엄마를 병환으로 잃고 큰누이가
열아홉살 부터 살림을 하게 되어 방학을 하면 누이를 따라 외갓집에를 가서 지내다 오곤 했지요.
오늘은 큰이모의 외손녀이고 이종사촌 누님의 딸인 명숙이(우리 마눌과 동갑, 닭띠) 와의 추억을
이야기 해 보려구요.
저하고는 세살 차이지만 아저씨와 조카이고 저는 서울에 살아 시골 아이들과는 다르게 얼굴이나
살결이 하얬을 것이고 얼굴도 이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보통집의 아이들
보다는 훨 보기가 좋았겠지요. 그런데다 저도 남동생만 둘이고 여동생이 없어 귀여워 했으니 서로
잘 지낼 수 밖에 없었고 명숙이는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만 둘이고 해서 제가 내려 가면 잘 따랐어요.
그렇게 커가던 중에 중고 시절을 보내고 제가 군대에 입대를 했고 조카는 수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했는데 휴가를 나와 이모네를 들렸을 때는 집으로 가는 저를 따라와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 제가 제대를 하고 몇년 후에 명숙이가 결혼을 헀고 그이후 저도 결혼을 하고
나서는 서로 생활이 바빠 연락이 뜸해지고 가끔 외사촌들을 통해서 어찌 사는지만 전해 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공무원이 되어 최근에는 경기도 화성시에서 보건직 공무원을 하더니 사무관 승진을해서
동장으로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몇달 전에 연락이 되어서 서로 안부를 전했습니다. 서로 바빠서
만나 보기도 힘든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 봐야지요. 칠팔년 전에 평택에서 근무 할때 한 번 보고는
못봐서 궁금도 하고 어려서의 추억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니 얼굴 마주하고 그 때를 생각해 보고
싶네요.
벌터에서의 추억을,,,
- 2016. 8. 30. 원효로에서 "연희 나그네" -
D +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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