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퇴근길 버스를 타고 오던 중에 기사가 뭐라고 하는 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휴일이라 한가한 버스에 연세 드신 안노인 한분이 현금을 내셨는지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그걸 꺼내어 자리로 가는 분의 모습이 보이고 어서 앉으라는 광채 나는 선글라스를 쓴 버스기사의 큰소리가 이어졌다. 간신히 앉으신 할머니 두어 정거장 가셔서 연서시장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보니 겨울털신을 신고 계셨고 괜히 내가 눈가가 흐려졌다. 내가 철이 들 무렵부터 보고 자란 우리 할머니 나와 60년 띠동갑이셨고 90˚로 꺾인 허리로 걸으셨지만 1979 당시로는 장수하신 여든여섯에, 맏손자인 내가 제대를 하고 난 뒤에 돌아가셨다. 평생 일도 모르시고 가만히 정좌세로 사셨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여덟 살에 당신의 아버지가 삼 남매와 꽃 같은 색시 두고 집을 나가는 책임회피를 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가장노릇을 하셨어도 아마도 보통의 엄마와 달랐던 할머니 셔서 고생을 두배로 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우리 엄마 말씀으로 함께 자다 할머니 다리에 살이 닿으면 톡 밀어 낼만큼 쌀쌀맞으셨어도 늘 똑같은 식사량에 식탐이 없으셔서, 그래서 장수를 하셨다고. 우리 엄마 당신은 식탐이 많아 많이 잡숫고 소화를 시키지 못하신다고 했었다. 우리 할머니는 아래위 이가 하나도 없으셨어도 오물오물 잘 잡수셨고 사과나 과일은 언제나 반을 잘라 숟갈로 긁어 잡수셨었다. 맏손주라고 끔찍이 나를 아끼셨던 우리 할머니생각이 나서 눈가가 흐려졌고 나도 나이를 먹고 늙어 가는 걸 요즘 실감을 하는 게 바로 오늘 아침 같은 경우다.
나도 내가 나이를 먹어 몸의 행동반응이 늦어지고 길을 걷다 조금의 요철이 있어도 걸려 넘어질 뻔하거나 계단을 내려갈 때 발을 헛디딜 뻔하기도 하고, 그래서 승강기를 찾게 될 줄 나도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
오늘 3주 만에 안식일 예배를 드리러 아현동에 내려 바로 교회로 가질 않고 여기 아현분관에 들어와 일기를 쓰고 있는 이유가 2015 년 말부터 아내를 따라 나왔지만 아직도 무늬만 교인이고 믿음이 약해 아침 일찍 교회에 가면 오후까지 있는 게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성경 읽기를 여섯 번을 했고 그 뒤로 성경筆讀을 시작을 했다. 읽기도 쓰기도 하루 빠짐없이 하는 이유다.
자 이제 큰길을 건너 교회에 가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도록 하자.
- 2023. 6. 3. 안식일 오전에 마포평생학습관 아현분관에서.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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