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 내가 태어나고 자라 삼십이 넘어까지 살았던 내 고향 영등포구 신길동 147번지 영신초교 부근 동네에는 우리 陰城박가 열서너 가구가 함께 살던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꼭 한집이 남아 있고 당숙모와 둘째 아들 내외가 아들도 장가 보내 내보내고 살고 있고.
오늘 내 고향을 돌아 보게된 것은 이제 몇분 안계신 우리 윗대 분들중 한분이신 집안 당숙모께서 어제 저녁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바로 조금 전 운명을 하셨다고 해 지나간 나의 어린시절을 돌아 보게 되었다.
195,60년대 신길동 가마골(강씨와 박씨가 많아, 또는 항아리를 굽는 가마가 있어서)에는 논과 밭이 남아 있던 한적한 동네였다. 그리고 열서너 가구 박가네 집안이 모여 살았다. 그중 세집은 넉넉하게 잘 살았고 우리집을 포함 나어지 집안은 겨우 먹고 사는 집들이었다. 그 잘 살던 집중 한집의 당숙께서는 아마도 자수성가를 하신걸로 알고 있는데 영등포구청에서 지적도를 떼면 당숙분 성함이 꽤 많다고 할 정도였고 철광석에서 쇳물을 뽑는 공장도 했던 기억이 나고 영등포 연흥극장옆에서 종묘사도 오래 하셨던 집안이었고 오늘 새벽 돌아 가신 분이 바로 그 당숙 아래 동생의 제수씨였다. 여자 형제 세분인가에 남자 형제분이었는데 큰당숙도 둘째 분도 돌아 가신지 오래고 큰당숙의 남매중 아들은 그 당시 한양공대를 나와 집안공장을 하다 지병으로 딸하나 남기고 돌아 갔고 세종대 전신인 수도여사대를 졸업한 우리 맏누이 동갑인 누이도 벌써 이십여년 전에 아들둘과 매형을 두고 돌아 갔다. 그리고 오늘 돌아간 당숙모네가 아들셋과 딸하나중 형뻘인 맏아들도 간지 이십년이고 그 아래는 한달여전 미국에서 병으로, 연대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막내 동생이 아들 장가보내고 벌써 육십내 중반이다. 참 슬픈 가족사고 슬픈 집성촌의 과거사가 되었다. 그나마 내가 그 시절의 단순 기억력이라도 좋아 이만큼이라도 기억을 살려 보지만 아마도 여기까지가 아닐까 싶다.
먼저 가신 윗대분들 그리고 우리. 맏누이와 집안 형제들 누이들 모두 좋은데 모여서 옛 얘기 나누면서 편히 지내시기를 기도 드린다.
오늘 저녁 장례식장이 정해지면 오랜만에 남은 형제들 얼굴을 보겠다.
- 2025.1.18 퇴근길 지하철에서.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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