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운정 친구네를 다녀 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에 신길동 고향을 떠나 성북구 하월곡동의 아버지가 다니시던 소규모 제지공장, 파지를 사다 물에 풀
어 재생지를 만들던 종이공장의 공장장을 맡으시면서 공장과 담이 붙은 담장옆의 개량 한옥 두채중 한채를 공장사택으
로 구입하여 우리가 이사를 했다. 신길동 마당 넓은 초가집은 팔고. 그 집을 산 사람이 마당이 넓어 두채를 지어 팔았다.
지금 그 동네가 재개발을 하지만 우리 집 부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신길1동 대신시장과 영신초교 일대가 슬럼화 한지 오
래인데 , 그래 고향을 잃은 기분이다.
그렇게 이사를 해서 3학년을 다니고 다음 해 1969년에 입학을 한 서울공고 건축과에서 만난 동기가 집이 같은 방향인 미
아리 대지극장 맞은편이라 가까워졌고 그 친구와 그 동네 국교동창인 어제 운정친구도 토목과에 입학을 해서 그 때 부터
만난 친구다. 나도 별종이지만 운정친구는 아주 별난 별종 친구다. 당시에는 몸무게도 엄청나가고 허리둘레도 컷고 먹는
양도 많아 한 번에 라면 네, 다섯개에 밥도 말아 먹는 대식가였다. 그 집이 우리집과 가까웠고 아들 다섯을 키우신 엄마
가 집 대문 옆에 작은 가게를 하셨었다. 처음에는 만두와 찐빵을 파셨고 나중에는 만화방을 하셨었다.
그래 친구와 나는 취미도 다르고 과도 달라 친구는 중학 동창인 친구와 어울려 다니고 나는 3학년에 공부도 실습도 나가
다 말고 허송세월, 만화방에 혼자 가서 물론 돈도 안내고 만화를 보고 친구 어머니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했다. 그
리고 그 친구의 국교동창들과도 어울려 그 친구네 잠그지도 않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 안채에서 놀고 라면도 끓여 먹고
함께 잠도 자고 그렇게 고교를 졸업하고 나는 어영 부영을 이어 가고 친구도 재수를 한다고 하다 입대를 하고 나는 일곱
살에 입학을 한데다 한살이 더 줄어 거의 4년 이상을 낭비하고 늦게 군대생활을 하고 1979에 제대를, 친구는 1977에 제
대를 하고 그 뒤로는 취직을 해서 열심히 살다 1983에 거제도 대우조선에 다닐 때 지금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지금까
지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2018에 몹쓸 병이 와서 지금은 걸음을 제대로 못걷고 있다.
그 어머니가 1997까지 아버지의 병간호를 10여년 하셨고 지금까지 출가를 못한 셋째 아들과 안산에 사시는데 얼마 전부
터 치매가 와서 안타깝고 그 어머니보다 세살을 더 잡순 우리 엄마는 2014.10월에 검사받으러 병원에 가셔서 환자가 되
어 지금도 역시 결혼도 안한 막내 아들 24시간 간병을 받고 계신데 일반병원이라 3개월 후 한달을 다른 병원을 옮겨다니
고 계시다.
그 어머니는 지금도 친구와 가면 저를 알아 보시지만 몇해 전부터는 해라를 안하셔서 더 슬프다. 그런데다 둘째 아들도
아픈걸 보셨으니 속이 어떠시겠나.
그저 우리 엄마도 친구네 어머니도 친구도,
가실 때 까지 편안하게 지내다 가시시를 소망한다.
- 2022. 4. 25. 새벽부터 내린 이슬비가 이제 멈춘다. "연희 나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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