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음력 오월 보름날.
오늘 음력 오월보름날 늘근소년이 태어난 날이다.
내 생일이라 나는 태어날 때 기억이 없지만 가족 중 제일 기억을 잘해줄 엄마는 내가 일곱 살이 되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우신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던 해, 1960 가을 음 10월 스무날에 세 살짜리 막내아들과 세 누이 오 남매를 두고 知病으로 돌아가셨고 저하고 띠동갑 아버지께서는 1982.1.1(1981, 음 12.6)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역시 띠동갑 맏누이도 1992 여름에 뇌출혈로 역시 오 남매를 두고 가서 내 생일들은 기억을 했지만 나의 태어난 時를 아무도 기억을 못 했다. 네 살 아래 동생은 내가 아버지 하고 영등포시장에를 다녀와서 해가 뉘엿 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던 시간 집안 마당에 들어 서니 아기울음소리가 나고 엄마가 아기를 낳았다고 하던 기억이 난다. 다섯 살 때의 기억은 한 가지 더 허리가 많이 굽었던 역시 같은 띠(우리 집안에 말띠가 넷 할머니, 아버지, 맏누이, 나) 할머니 등에 업혔는데 동네 구대인이자 친구 엄마였던 분이 이 눔 자식 다 큰 놈이 할머니 등에 업혀 다닌다는 지청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말띠 넷 중 나 하나만 남았다. 그래 더 외롭다. 인간본능일 테지. 열 살부터 키워서 장가까지 보내주신 엄마, 백 살이 되셔서 2014.10월부터 병원에서 환갑 된 막내아들 간병받고 누워만 계신 엄마와 1978 미국에 이민을 간 둘 째가 된 누이와 매형도 3월에 나와 있고 여기 사는 두 누이하고 두 남동생이 있는데 1992에 일찍 간 맏누이만 없다. 각설하고 내가 우리 나이 일흔 하나가 된 게 지금도 낯설고 실감이 안된다. 손주를 못 봐서 더 그럴 것이다. 세상사 억지로 되는 일이 있던가. 그저 順理대로 따라야지.
아침 퇴근 할 때 교대자와 기분도 별로였는데 잊어야지 어쩌겠는가.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업종뿐은 아니겠지만 동료들에 대한 배려가 너무 아쉽다는 것이다. 물론 바라지도 말고 내가 먼저 잘하면 되는데 하도 들락거려 잘할 기회보다 신입이라 배려가 아쉬울 뿐이라 문제다. 여튼 모두 내 탓이다.
- 2024. 6. 20 음 5.15. 마포학습관에서. "연희 나그네" -
D + 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