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人生無相.

연희 나그네 2022. 5. 25. 17:40

 

 

 

오늘 집안동생으로부터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받았다.

신길동 고향에서 함께 자란 촌수는 좀 멀어도 집성촌이라 서로 가깝게 지냈고 바로 위 형이 나보다 한살위였지만 내가

일곱살에 학교를 들어 가 동창이 되었고 중학교 3학년에 우리집이 하월곡동으로 이사를 해서 고교졸업을 한 다음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어울리며 서로 집안을 오가고 동생네 집에를 더 자주 가고는 했다. 그러던 그 형이자 친구가

몇해전 부터 연락도 안하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도 모르고 오늘 전화를 한 동생이나 그 아래 여동생, 그리고 막

내 동생도 작년에 내가 저희들 형이 궁금해 모두 전화를 했는데 한사람도 받지를 않아 내가 서운해 번호를 전부 없애서

오늘도 누군가 하고 받았고 나중에 그 얘기도 했다. 그랬더니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고 하면서 전화를 한 이유를 얘기했

다. 다름이 아니고 그의 사촌형이 병이 중해 얼마 못살겠어서 내일 마지막으로 가보려 한다고 알릴겸 전화를 했다고. 물

론 안부도 궁금하고. 그에게는 큰집인데 돌아 가신 큰엄마도 집안 일은 맡아 처리를 잘 하셨어도 시동생이 평생을 놀고 

지내 동서가 재봉질로 먹고 사시고 큰댁에 큰일이나 명절때는 온갖 굳은일을 도맡아 하셨는데 내가 알기로 일체의 금전

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그랬어도 사촌형이라고 내게 전화를 했으니 착한건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제 친형은 서로 모른척 살면서 말이다. 

 

그 형님(나보다 13살위)으로 말하자면 딸 셋에 아들 하나 독자로 자라고 그 어머니인 당숙모께서 생활력이 강해 집안경

제를 일으키셨고 돌아 가실 때까지 경제권을 쥐고 계시는 바람에 재산보전을 했지만 아마 그뒤로 형과 형수가 어떻게 했

는지 신길동 고향에 있던 작은 건물과 이층집을 모두 팔고 김포시로 이사를 해서 옛어른들 초상때나 아니면 조카들 예식

장에서나 한번씩 보고 지냈다. 우리들 이십대에는 권위의식이랄까 아니면 우리 집안 동생들이 맘에 들지를 않아 동네에

서 만나 인사를 해도 큰기침만 으흠하고 다녀 우리도 피해 다니고 했고 오래들 산 동네라 구대인들이나 나중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산사람들에게도 별로 좋은 인상은 커녕 부모재산 가지고 평생을 편하게 사는 사람으로 알려 지고 장난삼아 하

는 놀이판에서도 밥으로 통했던걸로 알고 있다.

열댓가구 집성촌에서 그중 잘 살던집이 세집이었는데 제일 잘 살았고 연흥극장옆에서 연흥종묘사를 했던 당숙네는 당신

외아들이 당신 생전에 손녀 하나 남기고 신부전증으로 먼저 가서 조카들이 남았고 직계는 無했다. 영등포구청에서 지적

도를 떼면 당숙이름이 제일 많았다는 분이었는데. 그리고 다음집은 내가 알기로는 땅도 많았고 살림집도 넓고 비교적 차

도에서 가까워 진도이발관이라고 점포도 있는집이었는데 거기는 당숙께서 이거 저거 사업을 하신다고 팔아 잡숴 그 외

아들 하나 당시에 대학을 다녔는데 졸업도 못시키고 멀리 울산에서 오래 직장생활을 하고 지금은 아픈형과 가까운 김포

에 살고 있다.

그렇게 세집중 그나마 아픈형네가 아마 미국의 조카에게도 꽤 보내 주고 지금도 먹고 살만큼은 가지고 있겠지.

 

이제 이렇게 우리 시대의 윗대는 거의 떠나시고 우리 형제들이 가는 시간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깔끔한 마무리를 할 것

인가 그것이 문제다.

 

- 2022. 5. 25. 좀전에 잠깐 빗방울이 날리더니 지금은 또 그만이다. "연희 나그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