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 그리운 시절.

연희 나그네 2020. 11. 20. 10:29

 

 

 

어제 신문을 보던중 한장의 사진에 눈이 머물렀다.

1976년 고교생들의 데모가 찍힌 사진의 피켓에 눈이 꽂힌거다. `김일성은 남침기도 포기하라` -서울공업고등학교-

남학생들이 하복을 입고 시위에 참가한 사진이었는데 `초전박살` `미친개에겐 몽둥이 뿐이다` 등등의 피켓이 눈에

띄었다. 가만 보니 모두 우리 후배들같은데 1976. 8.월이었으니 그해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후 관제시위가

아니었나 싶다.

그해, 나는 동창들에 비해 나이가 한살 주는 바람에 그해 10. 18일에 입대를 하는 바람에 비껴 갔지만 군대생활 삼년

차나 이년차 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내무반에서 군화를 신고 자고 항시 출동태세를 갖추었던 무렵이었다. 당시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도 단독군장을 하고 취침을 했다고 한다. 입대해서 들었던 이야기다. 그만큼 안보가 중요했던 시

절이었다.

그 사진에 눈을 멈추었던 것은 우리가 학교를 다닐때는 신문에 날일도 없었고 더군다나 실업계 학교나 학생들은 세상

의 주목은 커녕 인문계 아이들의 무언의 무시를 받아 시골에서 공부를 잘해도 대학교 진학을 할 수 없던 학생들, 전교

일등이나 등수에 들던 아이들이 우리 서울공고에 진학을 하던때라 정말 공부가 아까웠던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나 입

학후에 주당 사십여 시간의 수업중에 공통과목은 반정도 나머지 반은 전공과목 시간이라 그 좋은 머리들을 후퇴시키는

상태였다. 그래 우리 동기들 30명씩 두반이었는데 졸업후에 그중 40여명이 재수나 군제대후 진학을 해서 대졸 자격을

갖추었다. 물론 나는 학교 다닐 때도 그 이후에도 공부는 안했고 문예반이다 MRA다 엉뚱한 짓으로 좋은 세월을 흘렸

고 그뒤 군대생활을 마치고도 늦게 결혼을 할때까지 허송세월을 했었다. 지금도 부끄럽다. 나의 최종학력인 학교가 신

문에 나온게 신기하고 반가웠다.

 

사진을 보고 동창들에게 톡으로 보냈더니 몇명만 답을 하고 그냥 보고만 동창이 많은데 그중 과는 다르나 문예반 동기

인 동창이 부인이 암재발이 되고 보인도 지난헤 퇴직을 했다는 소식이 와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뭐라 위로도 어렵고 해

서 부인에게 위로 전하고 친구하고는 한번 만나자고 했다. 내가 이틀에 하루 시간이 나니 편할때 약속하자고. 칠십이

가까운 동창들이 건강하게 지내다 마무리를 잘 하기를 소망한다.

 

-2020. 11. 20. 어제는 봄날이더니 오늘은 바람불고 추운날이다. "연희 나그네"-

 

D + 2,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