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희동 일기(745).
어제 추석날 오전 근무까지 하고 열두시에 퇴근을 했다. 동료 근무자가 장남이라 차례를 지내고
출근을 하기로 해서 같은 장남이지만 십여년 전에 제사를 폐한 나는 요즘 명절에는 육년 째 엄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형제들이 모인다. 갑짜기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어누이들이나 동생들에게
면목이 없었지만 나혼자 지낼 수도 없어 그만 통보가 되고 말았다. 원래 내 계획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 제사를 모실 생각이었는데 기독교인으로 시집와 이십년이 넘게 기제사와 명절제사 음식을
챙겨 주던 마눌이 사는데 지치기도 했지만 나름 열심히 제사를 챙겼어도 집안에 걱정이 멈추지도
않고 장모님도 병환으로 돌아 가시니 마음이 변했던거 같다. 결혼 할때 나하고의 약속이었는데 그
만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 결혼무렵 미국살이를 시작했던 우리 엄마가 맏며
느리가 교회를 다닌다고 제사도 둘째에게 넘기라던 분이 미국생활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독교인
이 되어 그 후부터 다니러 나오시면 맏이 힘드니 너도 교회 같이 나가고 추도식으로 하라고 하셨고.
그렇게 제사를 `무` 하고 말았다.
점심무렵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 앞에 모두 모여 있었고 내가 제일 늦었는데 해마다 매형 산소에 명
절 당일에 두 아들이 누이와 성묘를 가서 참석을 못하던 여기서 제일 위인 누이네 큰녀석에게 미리
가라 해도 일부러인지 꼭 그날 가서 올해는 내가 며칠 전에 블로그 게시를 카톡으로 보냈다. 그런 얘
기를 올린 날에. 그래서 그랬는지 이번에는 하루 전 열나흩 날에 성묘를 다녀 와서 그 누이도 왔는데
병원 일층 로비안에 들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했으면 되는걸 나중에 보니 내게
톡을 보냈다. 그래도 답이 없으면 전화를 해봐야 하지만 그냥 있다 우리가 전화를 해서야 그 안에 있
는걸 알았으니 그 누이도 나도 타고난걸 바꾸기는 애초에 틀렸지.
그래 다른 때는 주위 식당들이 영업을 해서 점심먹기가 수월했어도 어제는 병원면회가 안돼고 해서
문을 연 식당이 없고 한집 `김밤천국`만 주인부부가 문을 열고 장사를 했다. 그래 그리 들어가 열명
이 음식을 시켰는데 제 각각 시켜 미안했지만 세상이 바뀐걸 어쩌랴. 이제 이런 모임도 얼마나 갈까
싶고 누워 사람만 멀뚱히 쳐다 보는 엄마도 그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거 싫다고 이십사시간 간
병을 거의 육년째 하는 막내동생도, 바라만 보는 형제들도 가슴만 타는 일이다. 며칠후면 삼개월이
차서 다른 병원으로 한달살이를 가셔야 하는데 갈데도 마땅치 않다니 걱정이다. 이 모든걸 막내에게
맡기고 있으니 맏이인 나도 속만 탈 뿐이다. 치료비도 그런데 물을 수도 없고 대강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게 점심들을 먹고 헤어졌는데 다른 때는 아무 말없이 혼자 가던 마눌이 이번에는 같이 돌아 가자
하는데 병원 주위에 여기 근무지 보안으로 새로 온 젊은친구(우리 보다)가 신길동 병원주위에서 원룸
생활을 한다길래 그럼 엄마뵙고 잠깐보자고 미리 약속을 했으니 안갈수도 없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
라고 화를 내고 가버렸다. 그 전날 일로 내가 화를 내도 시원치 않은데. 그렇게 그 친구 만나 소주 한잔
하고 입가심을 한대나 생맥주까지 한잔하고 헤어 지면서 어서 모아 같이 살고 싶다는 엄마 모셔라 하
고 헤어져 어디냐고 보냈더니 영풍이라고 해서 기다려 하고 조금 취해 피곤한데 가서 한바퀴 둘러 봐
도 없어 포기하고 걸어 연희동으로 가던중 톡으로 집에 들러 반찬 가져 가라길래 가서 한참을 기다려
도 바로 나오질 않아 간다 하고 간신히 걸어 다 내려 왔는데 어디쯤 이냐고 전화 다 내려 왔다고 하고
숙소로 들어 가는데 덥고 힘이 들어 죽을 뻔 했다. 그래 또 삐지고.
오늘 아침에 동네 한바퀴 돌고 집앞으로 가서 반찬내놓으라, 지금 보기도 싫다고 문밖에 내놓아 가지
고 출근을 했다.
아 삶의 고달픔이여.
늘근소년이여.
(아주 오래간만에 "연희동 일기" 를 이어 갑니다}
D + 2,859
-2020. 10. 2. 추석연휴 3일차 근무지에서 "연희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