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버리기.
국민학교를 일곱 살에 일찍 들어가 고교도 일찍 졸업을 했다.
호적으로는 여섯살 만으로 다섯살에 학교를 입학한건데 그 때만 해도 조금 어설펐는지
아니면 동사무소에 당숙이 근무를 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일찍 입학을 했다. 아버지께서
위로 딸셋과 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어린 나이에 맏누이와 홍역을 하다 그만 호적에도
못 오르고 일찍 가서 내가 장남이 되어 나중에 왜 한살을 줄여 신고를 했나 여쭈니 군대를
조금 늦게 보내려 했다 하셨다. 그 아들, 형이 살았으면 아버지께서 고생도 덜 하셨을 것이
고 나도 맏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 났을텐데 사람 사는일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맏아들 노릇을 했나보다 생각들겠지만 정반대였기 때문에 오늘 그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한다. 아마도 전에 한번쯤, 아니 여러번 올려 오래된 친구분들은 기억을 할지
도 모르는데 친구가 몇분 남지 않아 다시 올려 보는거다.
그래 내 친구들, 동창들이 지금도 오랜만에 동창회 참석을 하면 놀리는 친구들이 있다. 저
희들 보다 어리다고. 그래 열아홉살에 고교를 졸업하고 나이까지 한살 줄어 거의 사년을
보내고 그해 시월에 논산훈련소로 입대를 할때까지 손에 꼽을 만큼 가끔 직장을 다니고
좋은 시절을 버리다시피 했다. 지금 왜그랬냐 물으면 나도 대답할 말이 없다.
요즘 말로 그냥 `멍` 때리는 세월이었다. 그리고 삼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거의 팔년을 또
그렇게 보내고 서른넷에 지금 우리 마눌을 만나 겨우 장가를 갔는데 빈손이었으니 얼마나
힘들게 보냈겠는가. 좋은 직장에서 나이 들어 결혼을 안해 창피하다고 그만두고 지 맘에 드
는 사람에게 시집간다고 아무것도 없는 칠남매 장남에 기제사만 여섯번이 있는 내게 솔직
하게 얘기하는걸 보고 무엇이든 속이지는 않겠다 생각을 하고 죽어도 못준다는 돌아 가신
장모님 말씀도 거스르고 시집을 와서 살다보니 아마도 후회막심이었을 텐데 자신이 결정을
했으니 누구에게 표현도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속이 까맣게 탓을게다. 그렇다고 성격이
나 좋았나 그도 불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장가를 가겠다고 한거부터 욕심이었고 무리수였는데 아마도 놓아 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랬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이 되지만 그때의 그 잘못으
로 나머지 세월을 참 어렵게 버티고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 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가장 아쉬운건 공부를 안해 진학을 못해서 전문분야 교육을 받지 않아 한번도 해보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감인데 그때로 돌아 가면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할까 그거이 궁금하다.
ㅎ ㅡ ㅎ ㅡ ㅎ ㅡ .
-2020. 6. 28. 쉬라고 있는 일요일에 근무를 하며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