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적응이 안되는데,

연희 나그네 2020. 5. 23. 20:18

 

 

 

오늘도 내 집에 들어오니 어색하고 이상하다.

대문도 그렇고 본문의 구도도 바꿔야 하는데 잘 되지를 않으니 어쩌란 말이냐.

 

오늘은 큰맘먹고 얼갈이 한단과 꽈리고추 두팩을 사고 점심에는 고추장 푼 두부

찌개가 먹고 싶어 두부한모 사서 끓였는데 엇비슷 내 입맛에는 먹을만 했다. 원

체 식성이 좋으니 무언들 맛이 없을까. 그래 오후에 마늘과 대파도 사오고 얼갈이

다듬어 세번 씻어 겉절이로 바로 먹을 수 있게 대강 담궜는데 소금이 조금 많아져

짜게 되었다. 그래도 나혼자 먹을거니 조금씩 먹거나 정 너무 짜면 오이를 좀 사다

넣어도 되겠지. 요즘 사정이 있어 집에서 반찬을 가져 오지 못해 평소에 마눌이 하

는걸 봐와서 재료만 있으면 대강 흉내는 낼수 있어 다행이다.

 

직장에서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는데 쉬는 날 장문의 메시지를 받는게

적응도 안돼고 고역이다. 다른데서 볼 수 없던 일이 여기는 꽤 있는 편이지만 내가

적응 하는 수밖에.

 

어제는 중,고 동창인 친구를 거의 십여년만에 천호역에서 만나 그동안 전화로 년중

행사처럼 소통은 했지만 못다한 소식 나누고 한잔도 하고 도중에 다른과 친구도 잠

깐 합석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몸이 좋지 않은데가 있어 술도 못마셔 조금

미안했다. 중고 동창은 중학교 3학년때 가까운 동네에 살아 알게 되었으나 삼년동안

한번도 한반이 아니었고 같이 어울리고 하교때 같이 다니던 세 친구중 나머지 둘은

나하고 같은반이었지. 중학생부터 신문을 돌릴만치 넉넉치 못했는데 그래도 겉으로

표안내고 열심히 살아 고교 전기과 졸업하고 군제대후 결혼을 하고 대학에 입학을

해서 건축과를 졸업했다. 결혼하고 대학을 다닐 무렵부터 연락이 끊겼다 이십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연락이 되었는데 대학졸업하고 공무원을 하다 부업으로 하던 식당이

잘못되어 다 없애고 트럭으로 고생을 할때였다. 중학교때 부터 아버지 하시던 일이 

잘못되어 힘들게 살았는데 지금도 힘들게 사는걸 보니 좋지가 않았다. 그저 몸이라

도 건강하게 지내자 약속하고 다시 기약없이 헤어져 돌아 왔다. 그래도 겉으로는 나

처럼 힘든 표현을 안해 다행이었다.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

 

오늘 일과가 끝나고 저녁도 먹었으니 이제 대기 상태로 쉬자.

 

오늘 "바보 노 무현" 11주기라고 봉하마을에 많은 인사들이 참석을 했다지. 더 살아서

어줍잖은 사람들 바로 이끌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모멸감을 참지 못하고 가버린 당신

그립습니다.

 

 

-2020. 5. 23. 나무전지를 하려 했으나 평일에 하라 해서 못했음. "방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