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시절(여섯번째)
고교시절(6)
요즘 쉬는 날 친구의 차를 타고 그 시절의 김포 일대 양곡, 마송, 하성,
강화까지 돌아 본바 다른 곳도 그렇지만 격세지감이더군요. 당시에는 그냥
보통의 시골에 군부대가 주둔한 동네였는데 해병 2여단도 오래 전에 사단이
되었고 그 한적하던 동네가 건물도 많아지고 아파트도 들어서 상주인구도
꽤 많아졌구요.
고교를 졸업한해였으니 겨우 열아홉살(일곱살에 입학)이었고 키도 작아
아마 보는 이들은 얼마나 어려 보였을지 지금은 짐작이 갑니다만 당시에는
다큰 성인으로 알고 명색이 건축기사(보조)로 여기고 행동을 했습니다.
콘크리트 타설을 할때면 당시의 콘크리트밐서에 인부들이 일일이 질통에
담아 날라 붓는 모레와 자갈, 등짐으로 붓는 시멘트의 비율을 순서대로 붓도록
지켜보는데 막상 인부들이나 콘크리트 오야지는 빨리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순서를 바꿔 가면서 하려 하고 저는 막아서서 중지를 시키니 오야지가 참다
성질을 무리는 사태도 생겼지만 눈하나 깜짝 안하고 지시를 했으니 얼마나
가소로웠겠나요. 그래도 틀린 지시가 아니었으니 어찌 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욕을 했겠지요. 그들 각 분야 오야지들이나 인부들에게는 그렇게 대했지만
사무소에서는 먼저 얘기대로 급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실습이나 졸업후의
직장은 설계사무소든 현장이든 모두 같은 대우였으니 동창생 60면중 40명 이상이
재수나 삼수 군대 제대후에 진학을 해서 학력을 갖추게 됩니다. 학력간의 격차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요. 실제 직장에서 하는 일은 대졸 초임들보다 훨 잘하는데
그 격차가 너무 크고 진급도 어렵고 하니 실제 학위가 필요없는 곳이나 사람도
대학에 진학을 하고 학력이 넘치니 대우도 못받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되는
웃지 못할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 중 략 -
- 2018.1.14. 포근한 휴일근무를 하며 "방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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