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장똘뱅이의 추억(열 한 번째)
철제 박스로 점포를 만들고 유리문을 잠그고 겉에는 포장으로 다시 가리고 다니니
전보다 시간은 많이 줄었으나 봄이 되니 취급하는 품목과 물건이 많아져 시간이 걸리기는
매 한가지가 되었지만 가게에서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니 그것 만으로도 감지 덕지 할
일이었습니다. 헌데 그즈음부터 가뜩이나 수입코너가 도처에 많아서 마진이 좋지를 않았는데
유행마저 멀어져 가기 시작을 해서 그 것이 문제였습니다. 일반 가게 같으면 어떻게 품목을
한 번 바꿔 보기라도 할텐데 노점이고 주위에는 전부 生物만 취급하는 곳들이니 어쩌지도
못하고 장사를 이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해를 보내고 1996년이 되었습니다.
그 해에 아들녀석이 초교 3학년이 되고 보니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신경도
쓰이고 결혼해서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10년을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서울로
들어 가고픈 생각도 들기 시작을 했지요.
해서 자리를 넘기고 서울로 가자는데 마눌과 합의를 하고 후임자를 알아 보기 시작을 했습
니다. 원래는 도로위에 자리를 잡은 무허가 장터이기 때문에 매매를 할 수 없으나 그 곳에
터를 잡느라 고생한걸 생각하거나, 월세가 없으니 그만도 땅집고 헤엄치기이니 몫돈이나
월세 부담을 하기 힘든 서민들에게는 괜찮은 자리였지요. 더군다나 우리는 박스형태라 여러
가지로 다른 자리에 비해서 좋았구요. 그러던 중에 이웃에서 과일장사를 하던 내 또래 친구가
한 칸을 인수하겠다 해서 나머지 한 칸만 넘기면 되었는데 그도 어떻게 외지인에게 연결이
되어서 그 해 말에 자리를 넘기게 되어 물건은 원가이하로 팔고 자리를 넘겼습니다.
그 뒤로는 새로운 가게를 하기 위해 알아 보던 중에 당시 큰처남이 다니던 회사에서 유통
사업부문으로 서울 시내 몇군데에 지금의 중급수퍼를 운영을 했는데 처남이 유통사업 본부장을
맡고 있어 우리에게 당시 이문동 외대앞 동네의 <이경시장>에 있던 마트가 잘 되어서 확장
공사를 할텐데 그 수퍼안에 개인 점포를 몇군데 들일 계획이라고 기다리라는 거였습니다.
헌데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고 우리는 당장 생계를 이어야 해서 시장안에 작은 점포
가 주인이 하던 가게라 보증금과 월세는 비싼편이었으나 권리금이 없고 몫이 좋아서 그 점포
를 계약을 하고 얻게 되었습니다. 처음 외대앞에를 가서 보니장사가 될 곳은 외대 정문에서
외대앞역까지의 차도변 뿐이었는데 1997년도 그 당시에 열평 정도의 권리금만 억단위를
부르는지라 엄두도 내지를 못하고 그 오래된 시장, 제가 어려서 다니던 영등포시장과 같은,
아직도 서울에 이런 시장이 있었구나 할 정도 였는데 그런 곳에 가게를 열었으니, 지금 생각
하면 기가 차지만 당시에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시장이 지금도 있고 그 때
같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중 략>
- 2016. 1 .23 "연희 나그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