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동창의 부음;
어제 오후에 집을 나서는데 메시지가 왔더라구요. 누르는 순간 뜨는 이름이
고교동창이라 반가움에 펼치니 이게 웬 날벼락! 이 O준 상무님 별세 라는 문구가
본인 이름의 번호로 왔더군요. 그 녀석 폰에 보관되었던 번호로 주윗 분이 보냈겠지요.
먼저 간 동창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본인 번호로 받은 부고도 처음이고 자주
만나지도 못했던 녀석이라 미안하기도 해서 갑짜기 걸음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2013 년 초여름에 다른 동창의 아들 결혼식에서 얼굴만 익은 친구가 "제영아" 나
모르겠지 하며 부르는데 미안하게 기억을 못했던, 그 시절 고등학교 무렵의 얼굴들은
거의 기억을 하는 편인데도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안했는데, 올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동창아들 결혼식에 제가 참석을 못했는데 궁금해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저에게 전화를 해서 이년 만에 목소리만 들었던 친구의 부고를 어제 그 것도 본인
번호로 받고 보니 그 어떤 초상 때 보다도 먹ㅁ해집니다. 더군다나 이년 전에 만났을 때
둘이서 따로 커피한 잔 하면서 다키워서 외국으로 유학을 갔던 딸 아이가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얘기를 듣고 둘이서 눈물을 흘렸었는데 가슴에 묻은 딸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있었어야 할 것을,,, 아직 사인도 모르겠고 어제 다른 동창과 통화 할 때 들으니
돌연사 같다고 했는데 오늘 오후 상가에를 가야 알게 되겠지만 자세히 알면 무슨
소용이겠나요. 그 친구는 잠들었다는데,,, &.
고교 졸업 후에 취업을 한 친구들은 거의 일반건축을 했으나 이 녀석은 어떻게 광화문
부근에 있던 "고건축" 설계사무소에 들어가서 최근까지 우리나라 고건축(고궁,사찰 등ㄷ)
계에서 잔 뼈가 굵은 그런 전무가였습니다. 잘은 몰라도 고건축계에서 인재 한 사람을
잃은 일이 되었을 겁니다. 그 무렵 제가 그 사무실에를 놀러 다녔던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데 왜 다른친구를 만나러 다녔던 기억은 지금도 생ㅅ한데 이친구 기억만 가물한지,
그 이유중 하나는 지금까지 계속 만남이 이어지는 같은 과 동기들의 모임에 둘 다 자주
참석을 하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어찌 되었든 친구들의 부고를 접하게 되는 현실이
남은 삶에 대한 반추를 하게 합니다.
친구야!
남은 삶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먼저 간 딸과 만나서 못다한 아버지 노릇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친구들 기다려라. 머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야.
친구야. ㅇ ㅏ ㄴ ㄴ ㅕ ㅇ .
-2015.12.5 서공고 63회(1972 년 졸) 건축과 동창생 "제영" 이가 띄운다 -
(지난 해에 지병으로 떠난 고 "김 종환" 군의 명복도 다시 빌어 봅니다)
( 이 송별사를 올리면서 먼저가신 아버지, 맏누이, 동창들, 병원에 계신 우리 엄마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