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ㅇ장똘뱅이의 추억;

연희 나그네 2015. 11. 18. 08:12

 

 

 

한시간을 올린 글이 어디로 날랐습니다. 무얼 잘못 누른건 아닌 듯 한데
이걸 어디 가서 찾아야 할지 참,ㅊㅊ입니다.

- 오늘 다시 올리기는 어렵구요. 내일쯤 다시 올리겠습니다. 보시는 분들은

재미날 내용인데,,, ㅉ .

 

 

1987.7.3 일 늦은 나이(서른 넷)에 빈 손과 빈 몸으로 남의 집 귀한 맏딸을 데려와서

부천시 심곡동에 조그만 가게에 방한 칸이 달린 집에 세를 들어 결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참으로 뻔ㅃ했던 것이 직업도, 학력도, 모아놓은 돈도, 몇대 장손인 것 빼놓고는 정말 내

놓을 게 없는 OO이었지요. 장모님과 큰처남의 반대를 무릎쓰고 죽어도 오겠다는 마눌의

쓸데 없는(ㅎ) 고집 덕분에 탈 총각을 했지요. 아니면 지금까지도 혼자,ㅋㅋㅋ

해서 시작한 결혼생활이니 안 봐도 힘이 들었겠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 동창녀석이 하는

건축일(고교 건축과 3년을 다니고도)도 다니고 해서 겨우 살던중에 88년 가을, 하루는 마

눌이 무슨 장사(처음부터 내 직장생활은 원하지 않았음)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래서 하긴 해야 하는데 O이 하나도 없으니 큰누이에게 빌리기라도

해야 겠는데 말이 나오질 않으니 조금 기다리면 가서 얘기를하고 빌려서 시작을 해보자

했지요. 그랬더니 자기가 O이 있다는 겁니다. 아들을 낳을 무렵 오빠(큰처남)가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준게 있다는 겁니다. 내게 이야기를 하면 돌려 주라구 할 거 같은데 돌려 주기

도 뭣하고 해서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한참 지난일인데 도로 주라고 하기도 그

렇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는 다음 날 동대문 시장에를 아들을 멜빵에 마눌이 업고 나가서

아이들 가을 T셔츠를 도매로 사가지고 양손에 들고 전철을 타고 역곡역에 내려서 괴안동(예

전 신앙촌 입구동네)에 있는 조공아파트(조선공사 시공)앞에 가서 마침 문을 열지 않은 수

선집 앞길바닥에 아파트상가에서 사천원을 주고산 돗자리를 깔고 아동복을 펼쳤습니다.

 

마눌이 결혼 전에 강남터미널상가 8층에 있는(지금도 있음) 숙녀복상가에서 한 칸짜리 점

포를 열었었는데 장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 스물 여덟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있으

니 너무나 알뜰 하셨던 돌아 가신 장모님께서 용돈도 안주셔서(울 마눌이 닮았음, ㅋ) 동생

에게 부탁 동생직장인 회사신협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한 가게인데 나가서 차나 끓여 드시

고 목공예를 배워서 나무나 깎고 있고 책보고 했으니 뭔장사가 되었겠나요. 제가 가보니 기

가 막히더라구요. 그 조그만 가게도 다 못채워서 듬성ㄷㅅ 걸었으니 누가 들어 와서 옷을

사입겠냐구요. ㅎ. 저와 만난 것도 그 앞에서 옷가게를 하던 친구부인(지금도 하고 있음)이

장사 잘 하는 아가씨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 대상에 울 마눌은 끼지도 못했는데 어찌

연이 되려고 제가 놀러 갔던 날 하필 친하지도, 취향도 달랐던 그 가게에 앉아 있다 저를

보고는 나중에 누구냐고 물었다는데, 그래서 그 부인이 저한테 관심이 있나 보다 생각을 하고

둘을 만나게 해서 오늘 날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ㅎ.

 

각설,

그렇게 시작이된 우리의 장사인생이 삼년 전에 이문동 외대앞에서 두 평짜리 가게를 끝으로

마감을 했습니다. 그 전 2002년 부터 저는 직장생활을 했구요. 마눌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

달리면서도 생활때문에 이대앞으로 이사를 했던 2004년 부터 2012년 봄까지 출퇴근을 하

면서 고생을 했습니다. 장삿꾼도 못되면서 그 고생을 시킨 제가 OO이지요.

 

- 중   략 -

 

 

- 2015. 11.18 학습관에서, 새벽에 한시간 올린 글은 날려 버리고 "연희 나그네" -